매일신문

대입논술-87차 문제 가작

얼마 전, 고(故) 박종철 군의 명예 졸업장 수여식이 있었다. 언론에서는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어 가는 증거라거나 혹은 그를 민주화의 선구자로 찬양하는 글을 싣기도 했다. 비단 국내에서만 아니라 필리핀의 어느 소년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홈페이지를 해킹한 일을 두고 언론이 떠들썩했다. 이들 두 사건은 정치 권력, 정보 권력과 같은 권력자에 대항하는 소시민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의미 있는 사건이라 하겠다.

제시문에는 스무 명을 죽이며 철권 통치를 하는 읍장이 나온다. 그는 상한 어금니로 인해 치과 의사에게 고통을 당한다. 치과의사는 치료해 주지 않으려다가 마지못해 치료를 하면서도 고의로 마취를 피함으로써 그 동안의 울분을 해소하려 한다. 이는 읍장이라는 권력자에 대항하는 치과의사라는 한 소시민을 상징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도 이와 유사한 혹은 다른, 여러 저항의 모습들이 나타난다. 이들을 크게 정당한 절차를 거친 저항과 복수만을 위해 앞뒤를 가리지 않는 저항, 즉 단순한 저항의 모습으로 구별해 볼 수 있다.

이 같은 단순한 저항의 모습으로 제시문의 의사를 들 수 있다. 그의 저항 행위는 분명 부당하다. 그는 첫째, 동기의 정당성을 상실했다. 그는 의사가 해야 할 일인 환자 치료를 거부한다. 거기에 마지못해 환자를 치료하면서도 자신의 복수심을 위해 환자의 고통을 줄여 줄 행위를 포기하고 있다. 환자가 누구이든 의사로써 자신이 지켜야 할 의료 윤리, 직업 윤리를 어긴 것이다. 이처럼 그는 동기의 정당성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도 마을에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읍장의 무시로 보아 의사 개인이 생명의 위협을 받음으로서 마을 사람들에게 의료 행위를 제공할 수 없을 수도 있으며 나아가 읍장의 분노가 마을 사람들 전체에게 미쳐 더 심한 철권 통치가 자행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눈앞의 상황에 집착해 의사 자신의 작은 저항이 자신이 속한 사회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간과한 탓이다.

그러나 의사의 저항을 무조건 비난할 수도 없다. 일제 시대의 독립 투사, 유신 시대의 민주 투사들에서도 볼 수 있듯이 모든 저항의 길이 막힌 경우에는 저항의 정당성을 찾을 겨를이 없다. 따라서 치과의사의 거짓말과 의료 부당 행위는 최후의 수단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는 의사라는 직업인의 역할을 넘어서 사회 구성원의 역할을 한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 시대고 권력자와 다수 신민 혹은 시민간의 갈등은 존재해 왔다. 권력자 한 사람의 폭거에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일도 허다했다. 하지만 어느 시대, 어떤 상황이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먼저 정당한 절차를 밟고 다수의 의견 결집을 통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권력자 한 사람에게 맞서기 위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은 너무 미약하고, 동시에 일시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정당한 시위 절차를 거쳐 행해지는 시민 연대의 가두 행진이나 NGO의 시위 행위는 이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다만 선행된 정당한 절차에도 불구하고 사회문제의 해결이 요원해 보일 때에는 직업 윤리, 규제법 등을 넘어 로크가 말한 '저항권'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원칙이 지켜질 때 사회 발전을 기약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경환(검정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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