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관계는 영원한 우방도 없고 영원한 적국도 없다. 오직 국익만이 영원할 뿐이다. 지금 한미관계가 마찰음을 내고 있다. 북한노동당 국제담당비서와 김일성대학총장을 엮임했고 북한 주체사상의 이론적 원조로 알려진 초거물급 귀순자 황장엽씨를 두고 한미양국은 지금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사실 부시행정부 시작 이후 우리에 대한 미국의 오만성에 울분을 내연중에 있는 한국정부로서는 참으로 가당찮은 상황의 전개라고 볼 수 있다.
우리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부시정권은 강경대북자세를 취함으로써 남북관계는 냉기류속에 일체의 대화채널이 중단된 상황에서 느닷없이 의회내에서 매파3인방으로 알려진 제시 헤름즈 전 상원외교분과위원장, 하원의 헨리 하이드 국제관계위원장, 크리스토퍼 콕스 정책위원장이 그들의 비서관을 통해서 황씨에게 미국의회에 7월20일까지 출두(?)해달라는 초청장을 보냈다. 그것이 지난 1일이었다. 마치 미국 못가서 안달하는 한 노인을 봇짐싸가듯 한 2주일간에 데려가겠다는 발상이다. 한미양국은 엄연히 다른 2개의 주권국가이다. 당연히 마찰음이 발생해야 한다. 한국이 미국의 51번째 주가 아님을 보여주어야 한다.
국내에서의 황씨문제에 대한 여야갈등은 수긍이 간다. 언론의 자유와 거주이전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떳떳하게 미의회에 가서 김정일독재를 비판할 것을 주장하는 야당측이나 햇볕정책에 찬물을 뿌릴 것이 뻔하므로 황씨방미를 저지하는 여측주장 모두에 수긍할 부분이 많다. 그러나 한미간의 갈등은 이해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문제는 황씨초청에 대한 과정과 방법이다. 아무리 우방이고 혈맹관계라 해도 동맹국주권에 대한 존경과 예의가 있어야 한다. 황씨초청인이 미국정부가 아닌 개인자격이다. 피초청자는 한주권국가의 특별보호속에서 국가정보원이 제공하는 안가에서 생활하는 요시찰인물이다. 이런 사람을 마치 이웃노인초대하듯 7월 언제까지 의회에서 증언하게끔 날짜까지 못박아서 초청장을 들고 찾아오다니 말이 되는가.학수고대하다가 봇짐싸듯 데려갈수 있다고 사고하는 미국의회의 오만한 행동양식은 어떤 준칙으로 측정해도 국제예절에 위배된다. 특히 황장엽 전 비서같은 인물은 대한민국에서는 최고의 정보가치를 소유한 국보급존재이다. 남북분단 이후 북쪽에서 망명한 최고위인물일 뿐 아니라 그가 소유한 첩보와 정보, 그가 던지는 충고와 질책은 대북정책입안에 군인 몇개사단과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중차대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 인물을 보험도 없이 함부로 송출하란 말인가.
국내에서는 색깔론까지 제기하면서 황씨방미를 옹호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내용이고 우리끼리 이야기다.
적어도 국제규범에서는 언어도단이다.
역지사지로 쿠바의 카스트로 다음의 한 거물급 정치이론가가 미국으로 망명했다고 치자. 그래서 그 자가 미국 CIA의 특별호보로 비밀리에 생활하는데 한국국회가 그것도 실세위원장 몇몇이 자기들 비서관을 파송시켜 초청했을 때 미국정부가 선뜻 여기있소 하고 흔쾌히 수락하리라고 생각하는가. 정말 가당찮은 소리다.
몇년전 주 이집트 북한대사 장성길형제가 당시 중동제국의 북한스커드미사일 판매총책으로서 습득한 특급비밀 일체를 갖고 미국에 망명했을때 정보의 일부라도 얻겠다는 한국정보팀의 접근시도 자체마저 원천봉쇄한 미국이 아니던가. 어디 그뿐인가. 김정일과 특수관계 속에서 북한에 납치됐던 최은희부부가 탈북했을때만해도 한국에 정보유출을 꺼려서 미국으로 독점해버린 사건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따라서 미국측 요구는 정중히 거절함이 옳다. 우리의 자존심을 세우고 우방의 요구도 수용하는 방법으로 조만간 다른 기회를 잡아서 황씨를 초청케 하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편, 차제에 한국측의 오류도 짚어야 한다. 황씨같은 국보급존재를 김대중 정부는 너무 홀대하고 있다. 그래도 김영삼 정부때는 체제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그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했지만 현정부는 햇볕정책때문에 그를 구름속에 넣지 않았는가 자문해야 한다. 오죽했으면 국가정보원이 그를 안가에서 방출하려 했겠는가. 그러고도 지금와서 그의 신변보호 운운한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황장엽씨의 보호와 관리에 허점을 인정하고 차제에 심기일전하기를 촉구한다. 천신만고로 망명한 그에게 또 망명설이 있다니 참으로 가당치도 않다. 우리는 그의 여생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
장해광(계명대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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