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대문명을 찾아서

◈(13) 치첸잇사(2)-인간 제물 먹는 차끄몰

꾸꿀깐 신전의 경사도는 45도여서 위험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매우 가팔랐다. 북과 서의 두 쪽 방면에서 오르고 내리도록 되어 있었다. 맨 위에서는아주 멀리까지 사방을 관망할 수 있었다. 신전을 높게 쌓았던 목적이 물론 하늘에 한층 가까이 닿으려는 염원에서 비롯된 것이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래를 내려다보려는 의도도 깔려 있었으리라. 막상 내려오려고 아래를 보니 아주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24m라면 인간이 상당한 공포를 느끼는 높이인 데다가 경사가급하고 계단폭이 짧아 크게 긴장되었다. 눈 딱 감고 동료를 따라 북쪽계단으로 바삐 내려가다가 문득 얼마 전 미국여성이 떨어져 죽었다는 사고가 떠올라 중간에서다리가 풀려 혼쭐이 났다.

◈사람 심장 제물…생명수 기원

까스띠요에서는 전사의 신전이 보이는데, 이는 열지은 기둥들로 이루어진 계단식 기단위에 자리잡고 있다. 전사의 신전에 늘어선 1천여개의 석주에는모두 똘떼까 양식의 전사가 부조로 조각돼있다. 계단 꼭대기에는 차끄몰이 무표정하게 주광장을 응시하고 있는 반면, 신전 입구에는 머리를 땅에 대고 꼬리를 위로 한 깃털달린 뱀 한쌍이 양측면을 장식하고 있다. 1926년 카네기 연구소에 의해 전사의 신전 복원작업이 거의 마무리되었을 때 그밑에서 차끄몰의 신전이드러났다. 지난회에서 밝혔듯이 치첸잇사 신전의 내부에는 다시 작은 신전이 있어 이중구조인데, 원래 있던 내부 신전의 급경사 통로를 따라 올라가니 땀이 비오듯하였다.내부 신전의 꼭대기에 72개의 비취조각으로 장식된 붉은 재규어는 하얀 이를 드러낸 채 포효하고 있었고 그 앞에는 희생된 인간의 심장을 신에게 바치는 자세를취한 차끄몰상이 눈을 둥글게 뜬채 누워있었다. 희생된 사람의 심장을 놓기 위해 접시같은 것을 배위에 얹어놓고 손으로 쥐고 있는 듯이 비스듬하게 누워있는차끄몰(Chacmool)은 마치 오래도록 피의 맛을 보지 못했으니 제발 제물을 달라고 애원하는 듯하였다.

이런 차끄몰은 치첸잇사에서만 여러 군데에서 확인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 마야인들이 얼마나 열심히 신들에게 인간의 심장을 공양하였는지를짐작할 수 있었다. 이곳이 열대우림지역으로 비가 많이 오기는 하지만 내리자마자 석회암 지역이어서 곧바로 땅속으로 스며들어 늘 물 부족에 시달렸을 터이다.따라서 비의 신인 차끄에게 막 끄집어내어 뜨거운 피가 뚝뚝 흐르는 인간의 심장을 바침으로써 차끄의 피로 여겨진 비를 기대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기꺼이 인간을희생 제물로 삼았을 것이라는 해석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해골모습 조각 제단 '섬짓'

제물로 바쳐진 사람들의 다양한 해골 모습을 조각하여 놓은 돌을 쌓아 만든 제단이 바로 가까이에 있는 쫌빤뜰리(Tzompantli)라 불리는 곳이었다.쫌빤뜰리는 산 제물의 해골을 대중에게 드러낸 장소였다. 마야의 전통적인 문화와는 이질적인 것으로 멕시코 중앙고지대 문화의 영향을 받은 듯한데, 벽한면에 다양한 표정의 두개골이 새겨져있다. 이 해골들은 바로 옆에 있는 구기장(球技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마야를 비롯한 신정(神政)정치가 행해지고 있던 멕시코 고대 문명에서 공통적으로 찾아지는 것은 신전과 함께 지배집단이 거주한 궁전 및 광장 그리고 구기장이 배치된 점이다. 지금까지 유적지에서 보아 왔던 여러 구기장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것이 바로 치첸잇사의 그것이었다. 길이가 160m, 높이7m에 달하는 두 개의 돌담벽이 70m 간격을 유지한 채 나란히 달리고 있는데, 이것이 경기장의 코트이며, 구기장 끝의 양쪽에는 관객들이 앉아 관전하도록객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경기는 4, 5명씩 두 편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는데 손은 사용하지 않고 몸통과 엉덩이 그리고 발만으로 생고무 공을 양쪽 코트의중간 지점에 각각 배치해 놓은 둥근 골대(사진)에 먼저 넣는 쪽이 승리하는 방식이었다. 구멍은 공 하나가 겨우 통과할 정도로 작고, 특히 치첸잇사구기장의 골대는 유달리 높아서 경기가 쉽게 끝났을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날 경기를 진행한 경우도 있었다 한다.

◈'볼게임' 풍요위한 종교의식

특이한 것은 패자가 아닌 승리한 팀 주장의 목이 영광을 떠안고 신에게 제물로 바쳐졌다. 이는 볼 게임이 단순히 즐기기 위한 유희가 아니란것을 뜻한다. 게임 자체는 풍요를 위한 종교의식으로 해석되었는데, 아마도 마야인들의 부족별 결속을 다짐하는 행위의 하나로 기능하였을 터이다.해와 달의 창조를 설명하는 마야의 유명한 쌍둥이 영웅설화가 이와 같은 볼 게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면 게임의 역사는 그만큼이나오래되었을 듯하였다. 구기장 내벽의 기단 부분에는 승리자의 목을 잘라 제물로 바쳐서 흘러내린 피가 7마리 뱀이 되어 용솟음치고 있으며, 그 앞에는 화초에서 싹이 나는 그림이 있다. 또한 오른손에 칼, 왼손에는 목을 가진 군인과 해골이 새겨진 공을 둘러싼 양쪽의 선수가 그려져있다. 생명의 탄생과 연관된 물이 귀중하게 다루어졌음은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지만 물이 귀한 마야인들에게 비의 신 차끄가 산다고 여겨진 성스러운 샘이세노떼(Cenote)이다. 석회암의 토양 때문에 내린 비는 모두 땅속으로 흡수되고, 지하에 물이 괴어 웅덩이가 생기는데 그 웅덩이 위의 지면이 함몰된 것이 바로 세노떼로 유카탄 반도 최대의 우물이다. 지름이 61m, 깊이가 22m나 되는 석회암질의 물웅덩이인 세노떼는 미국 영사 톰슨이 1904년에 75달러에사들여 1911년에 발굴했다. 여기서 21개체의 어린이, 13개체의 성인 남자, 13개체의 성인여자의 뼈와 함께 수많은 장신구, 용기, 도끼 등이 출토되었다한다. 차끄 신이 이곳에 산다고 여긴 마야인들이 산 제물을 수장하였던 흔적이었던 것이다. 물이 생명의 탄생과 관계 있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죽음과 관련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神政정치 참상 충분히 실감

치첸잇사를 보면서 가졌던 느낌은 당시 사람들이 오직 신들을 위해서 살고 죽었다는 사실이었다. 아마도 생산에 종사하는 기본적인 시간 외 그나머지는 신을 위한 행위에 바쳤을 것이다. 그래서 섭취하는 영양에 비하여 과도하게 행한 노동은 그들의 수명을 지극히 짧게 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신을 위해 젊은 나이에 죽을 수가 있었던 것도 수명 자체가 짧았기 때문에 쉽사리 받아들였다고 한다면 지나치게 현대적인 해석일까. 마야인들은 그 후예들의 모습으로 미루어 키가 상당히 작았던 듯한데 이는 목이 짧았던 것과 함께 무거운 돌을 나르던 데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보였다. 우리는이곳에서 그 동안 말로만 들어온 신정정치의 실상을 충분히 실감할 수가 있었다.

글 .주보돈(경북대교수)

사진.최종만(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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