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0년동안 구두닦는 내 인생에 대해 한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내가 닦은 구두를 신고 웃으며 나가는 손님들을 보면 이 일이 가장 보람있고 즐겁다는 생각을 하죠".
손님들로부터 '대구에서 구두를 가장 잘 닦는 아저씨'로 통하는 중구 성내동 BBS 4호점 강호신(65.중구 동인동)씨. 그의 구두닦이 경력은 50년이다.
지난 1951년 14살이던 강씨는 집안 형편때문에 동네 형과 무작정 상경해 도착한 곳은 서울역. 하지만 대구에서 올라온 애들에게 일거리를 선뜻 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강씨는 결국 미군에게 얻은 구두솔로 서울역앞에서 구두를 닦기 시작했다."그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끼니는 고사하고 잠잘 곳도 없어 역 대합실에서 눈치를 보며 새우잠을 자곤 했습니다. 그때 구두 1켤레를 닦으면 1원을 받았는데, 지금처럼 2천원을 받았으면 벌써 부자가 됐을 것"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서울과 부산에서의 외지 생활을 끝내고 지난 59년 고향으로 돌아와 지금의 동성로에 자리를 잡은 강씨는 학교, 병원, 관공서, 경찰서, 매일신문사, 2군사령부 등 구두를 닦기 위해 대구시내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다.
강씨가 구두 1켤레를 닦는 시간은 20분. 구두에 묻은 먼지와 오물을 털어내고 손가락에 약을 묻혀 5분정도 정성스럽게 닦은 뒤에야 비로소 천으로 구두를 닦기 시작한다. "요즘은 구두닦는 기계까지 나왔던데, 기계로 닦으면 편하기야 하겠지만 진정한 광택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구두를 닦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닦는 사람의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동아백화점에 근무하는 석모(34)씨는 "다른 곳에서 구두를 닦으면 하루만 지나도 흐릿해지지만 강씨 아저씨가 닦으면 5일은 간다"며 "구두에 약칠하고 광내고 또 약칠하고 광내는 아저씨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 일부러 이 곳까지 다리품을 판다"고 말했다.
이렇게 정성스레 닦다 보니 오전 8시에 문을 열어 오후 8시까지 하루 12시간동안 50켤레밖에는 닦을 수 없다. "가끔 구두 닦는데 너무 오래 걸린다며 불평하는 손님이 있지만 대부분은 기분좋게 생각하고 꼭 다시 들른다"고 말했다.
이런 강씨에게 최근 인근에 밀리오레가 들어서면서 자리를 내줘야 할 형편에 처했다. "이 곳에서 구두를 닦은지 20년이 넘었는데 떠나라고 하니 정말 답답합니다. 이 나이에 다른 일을 할 수도 없고…".
강씨의 이마엔 세월의 흐름만큼이나 깊은 주름살이 파였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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