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화상환자와 딸기

병원이 인간의 고통을 집약시켜 놓은 곳이라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병상 다큐멘터리에 못지 않은 여러 가지 일들을 겪게 된다. 벌써 오래 전 일이지만나에게도 잊혀지지 않는 딸기에 관한 슬픈 이야기가 있다. 한겨울에 고속버스가 전복되어 화재가 발생한 사건이 있었다. 5, 6명의 환자가 몸 전체에 80%가넘는 심한 화상으로 입원했다. 환자 중에 여섯 살짜리의 어린아이가 끼어 있었다. 10살 먹은 형 걱정도 하고 어린아이 특유의 천진난만함이 가득한 아이였다.한 달이 지날 무렵 다른 환자들은 어느 정도 병세가 안정되었지만, 그 아이는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어느 날 밤 아이는 아파 울면서 딸기가 먹고 싶다고 했다. 아이의 어머니는 밤 12시가 다 됐는데도 딸기를 찾으러 온 시내를 헤맸다. 지금처럼 비닐하우스 온상 과일이 풍부하지 않을 때여서 결국 딸기를 사지 못했다. 대신 딸기 맛이 나는 하드를 사 왔다. 그것도 한 박스나 가져와 중환자실에 있던 의사들과 간호사들까지 입이 얼얼하도록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며칠 뒤 상태가 더욱 악화되면서 사망하고 말았다. 워낙 어린아이라 불쌍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했다. 그러나 바쁜 생활 탓에 곧 잊어버렸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봄날, 급한 환자를 보러 중환자실로 들어가던 중이었다.

문 앞에 어디선가 낯익은 아주머니가 한 손에 딸기를 들고 서 있었다. 바로 사망한 어린아이의 어머니였다. 왜 오셨는가 물었더니 아주머니의대답이 이러했다. 우리 애가 딸기가 먹고 싶다고 해 사 가지고 왔다고. 멍한 채 서 있는 아주머니의 눈은 초점이 없었다. 중환자실 간호사들의 말인 즉얼마 전에도 여러 번 딸기를 들고 와 자기 아이를 찾더라는 것이다.

매년 봄철에 딸기를 보면 나는 꼭 그때의 일이 생각 나 씁쓸해진다. 그리고 화상환자를 백 퍼센트 살릴 수 있고 흉터도 남기지 않을 새로운기술이 없을까 하고 잠시 골몰하기도 하는 것이다.

대구가톨릭병원 성형외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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