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재해교수가 새로 본 신명과 해방의 노래 '우리민요'

(31)여성 고난 배어 있는 삼 삼기 노래

삼 삼기 노래에는 삼 삼기와 무관한 것도 있다. 삼 삼기를 무료하지 않게 하면서 삼 삼기 능률을 올릴 수 있는 노래면 무엇이든 좋다. 그렇다고 하여논매기 소리처럼 앞소리꾼의 재량에 따라 아무 노래나 가져와서 부르지 않는다. 여성들의 삶과 정서에 맞는 노래들을 가려서 부른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시집살이 노래이다. 시집살이는 여성 수난의 상징이다. 봉건적이고 식민지적인 사회일수록 핍박받는 사람은 민중이자 여성이다. 봉건사회가 식민지 상황에 놓여 있게 되면 여성민중은 삼중의 고통을 겪는다. 계급차별과 여성차별의 이중고를 견뎌야 하는 처지에서 다시 식민정책에 의한 여성 동원의 희생을 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된할머니들은 이러한 삼중고 속에서 만신창이 인생을 산 여성민중들이다. 삼 삼기 노래도 여성민중의 어려운 처지를 노래한 것이 대부분이다. 어머니 없는 결손가정의 처녀들은 시집살이와 상관없이 고난을 겪는다. "삼 아홉 광지리 다 삼아도/ 날 찾는 이 전혀 없네/ 칠팔월 건들매야/ 건들건들 불지마라/ 삼가래는 목을 감고/ 이내 눈에 눈물나네"보고지고 보고지라/ 엄마엄마 울엄마야

핑풍에 기린 닭이/ 홰를 치만 오실란강

살강 밑에 흐른 밥이/ 싹 돋거덩 오실란가

보고지라 우리 엄마/ 원통하고 가련하다

대구의 김월생 할머니 소리이다. "옛날에 저거 엄마도 없이 말이라. 어립기 마 위롭기 컸는 처녀가 있었는데, 이 처녀가 삼을 하루 아홉 광주리삼아도 아무도 밥 줄 생각도 안하고 오라 카는 사람도 없어. 그래서 하는 소리라".요즘 말로 한다면 소녀 가장이 자신의 절박한 처지를 노래로 불렀다는 설명이다. 처지가 이처럼 절박하게 되면 넋두리로 하는 말도 곧 시가 되고 신세를 한탄하는 소리도 저절로 노래가 되는 것이다.어머니를 보고 싶은 마음을 간절하게 읊조린 대목들은 시적 형상성이 탁월하다. '병풍에 그린 닭이 홰를 치면 오실는가/ 시렁 밑에 흘린 밥이 싹이 나면오실는가' 하는 대목은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을 설정해두고서 기꺼이 그 상황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드러냄으로써 기다림의 희망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의지는 치열하지만 상황은 절망이다. 시집살이를 앞둔 처녀들의 불안한 심정도 가당찮은 공포로 다가온다. 야야 야야 그 말 마라/ 시집살이 궁금하다

두리두리 샛갓 집에/ 눈이 와여 썩은 집에

울도 담도 없는 집에/ 시집살이 석삼년을 살고 나니

삼단 (그ㅌ)은 이내 머리/ 비사리 끝으로 다 나갔다

예천 사는 황옥금 아주머니 소리이다. 나이 찬 처녀들의 관심은 으레 시집살이에 있다. 젊은 여성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시련의 통과의례가 바로시집살이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처녀들은 부부생활에 관한 호기심보다 시집살이의 어려움에 관한 궁금증이 더 컸다. 마치 입대를 앞둔 청년들이 군대생활에대한 두려움 때문에 선배들에게 그것에 관한 정보를 이모저모 들어보고자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시집살이 정보는 으레 삶을 조이는 굴레처럼 두렵게 엄습해 온다. 삿갓을 엎어놓은 듯한 나지막한 초가집은 눈 녹은 물에 지붕이 다 썩어버린 데다가 아예 울도 담도 없는 오두막이다. 이런 집에서 9년을 시집살이하고 나니 삼단처럼 숱이 많던 머리가 빗질 끝에 다 빠져버렸다고 한다. 빗질로 빠진 머리카락이곧 '비사리'이다. 시집살이가 얼마나 모질었으면 10년이 채 못되어 머리가 다 빠질 만큼 폭삭 늙었을까. "육남매 딸 하나로/ 수수까리 울막 밑에 치왔더니/ 시집갔던 석달만에/ 시아바님 감사 나고/ 감사 나던 석 달만에/ 낭군님은 병사 나고/ 병사 나던 석 달만에/ 앞대문에 용 기리고/ 뒷대문에 학 기리고/ 석 달만에 감사 앞에 술 치다가/ 꽃놀이상 유리잔을/ 햄양석에 지칫다고/ 며늘아기 요망타고/ 죽일라고기동하네"

의령 사는 박상연 할머니 소리이다. 예사 민요와 달리 이야기를 노래로 부른 서사민요이다. 육남매 가운데 외동딸로 태어나서 수숫대로 움막처럼지은 집에 시집을 갔는데, 다행히 시집간 지 석 달만에 시아버지가 감사 벼슬을 하고 남편은 병사 자리에 오른다. 다시 석 달만에 앞뒤대문에 용과 학을 그리고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시집살이의 행운은 오래 가지 않는다. 시아버지에게 술을 올리다가 유리잔을 함양산 돗자리에 떨어뜨려 깨는 실수를 하자, 감사 시아버지는며느리를 요망하다며 죽이려 든다. 병사 남편이 유리잔은 값을 치르면 다시 구할 수가 있지만 아내는 한번 죽으면 다시 살려낼 수 없다고 간절하게 만류한다. 그러나 '어라 이놈 시끄럽다/ 내일 아침 조사 끝에 며늘아기 죽일끼다' 하며 끄떡도 하지 않는다. 아들은 자기 아버지가 각시를 죽이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 절간으로 들어갔다가 다음날 나와서 여동생과 어머니에게 아내의 안부를 묻는다. '엊저녁에 자는 잠을 날이 새도 안 나오네' 한결같이 불길한 대답이다.

잔 방문을 열티리니/ 물명주 석자 수건

목을 매여 지 죽었네/ 안고 잡고 울고 나니

그새 너메 소이 되어/ 만경창파 떠나가네

아내가 자던 방문을 열어제치니 석 자나 되는 물명주 수건에 목을 매고 죽어 있었다. 남편이 시신을 부여잡고 울었는데 눈물이 소(沼)가 되어만경창파를 이루었다는 이야기 노래이다. 가부장 사회의 엄혹한 시집살이가 며느리의 조그만 잘못도 허용하지 않은 셈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며느리는그래도 행복한 편이다. 남편이 아내 편에 서서 시아버지의 가혹한 형벌을 막아주고자 저항하였을 뿐 아니라, 아내의 안위를 걱정하며 안부를 챙겨묻는가 하면, 방바닥이 소가 되도록 울어주지 않았던가. 남편의 사랑 속에서 겪는 시집살이는 가혹하더라도 견딜 수 있다. 믿고 의지할 든든한 남편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으로서 갖은 희생을 당하고도 의지할 데가 없는 이들도 있다. 마땅히 지켜주고 보호해 주어야 할 사람들이 도움은커녕 나 몰라라외면하다 못해 오히려 뒤통수를 치기까지 한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들이 바로 그러한 처지에 놓여 있다. 91년 정신대위령굿을 하던 무당이 신들림 현상을 통해, 일본사람들 욕하기 앞서 나라를 제대로 지키지 못해서 여성들의 정조를 유린당하게 한 조선왕조의 무능을 욕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배상 요구에 도움은커녕 오히려 훼방꾼 노릇을 하던 6공 정부의 줏대 없음부터 비난해서 눈길을 끌었다. 자신들을 유린한 일본군보다 자신들을 지켜주지 않는 정부가 더 문제라는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10년이 넘게 지속해 온 위안부 할머니들이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벌여온 수요집회를 정부가 불허하겠다고 나섰다. 일본 대사관 쪽에서 불편해 한다는 것이다. 할머니들이 부당하게 끌려가서 일본군에게 당한 고초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늘그막에 혼신의 힘으로일본정부에 항의하는 할머니들을 대신해서 정부가 그 역할을 감당해 주어야 마땅할 터인데, 오히려 정기집회마저 새삼 막겠다고 나선 것이다.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과 미국의 전국여성기구가 연대하여 군위안부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미국 정부 규탄시위를 며칠 전 미국무부 앞에서 대대적으로 벌였지만, 미국 정부가 이 집회를 진압하기는커녕 불허하지도 않았다. 하물며 우리 땅에서 일본에 항의하는 정기집회를 우리 정부가 막다니, 정부의 존재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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