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자립형 사립고, 留保가 옳다

전국 30개 사립고를 내년부터 '자립형'으로 시범운영하겠다는 계획은 유보하는 방향이 옳다고 본다. 이 문제를 두고 많은 논란이 일고 갈등과 혼란이 빚어지고 있는 실정이지만 그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더 클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평등한 교육 기회 보장에 기여해 지난 28년간 중등교육의 근간이 돼온 고교 평준화 정책이 부분적으로 해제돼 교육 기회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가중시키고, 입시 과외를 부추겨 '중3병'을 재발하게 할 것이다. 게다가 돈 많고 우수한 학생들을 위한 '귀족 학교'가 돼 계층간의 위화감과 교육의 불평등을 부르고, 결국은 입시 명문고로 변질돼 고교 서열화를 부를 가능성도 커진다.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을 통해 희망 고교를 신청을 받은 뒤 지역별로 6개 고교까지 추천, 심사를 거쳐 오는 10월 20일까지 선정할 움직임이지만 서울 지역에 이 같은 학교가 많이 생기게 됨으로써 지방과의 교육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도 뻔한 일이다.

그동안 고교 평준화 정책으로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이 제한되고, 학력이 하향 평준화됐으며, 개성과 창의력이 존중되는 시대에 적응할 인재를 키워낼 수도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육인적자원부는 일선 교육계를 비롯한 각계 각층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이 제도가 과연 평준화 정책의 부작용을 보완하며 위기에 빠진 공교육을 정상화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이 제도는 결국 1974년 이전의 고교 입시제도의 부활로 고교부터 시작되던 대입 경쟁이 중학교로 번져 '점수 따기' 경쟁에 휘말리게 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게 한다.

우리의 현실이 고교 교육은 대학 입시와 직결돼 있고 대학 입시가 엄존하는 한 자립형 사립고 도입은 결국 새로운 입시 명문학교를 만들고, 공교육의 붕괴를 가속화, 더 큰 교육 황폐화를 낳게 될 우려마저 없지 않으므로 여건이 성숙될 때까지 유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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