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하는 오후

아무도 그에게 水深(수심)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김기림 '바다와 나비'

무더위를 피해 백만 인구가 모여들었던 여름바다도 이제 텅 빌 시간이 가까워 지고 있다. 현실에서 바다는 더위를 식혀줄 시원(始原)과 상쾌의 공간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바다는 냉혹한 현실의 비유로서 바다이다.

근대적 이상을 추구했던 연약한 시적 자아가 바다를 청무 밭인가 오인해서 내려갔다가는 그만 물결에 어린 날개가 지쳐 되돌아 오고만다. 이 시를 읽으면 세파의 고달픈 일상에 허우적거리는 내 주변의 숱한 나비들의 초상이 눈 앞에 어른거린다. 안타깝게도.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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