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해광칼럼-김정일이 우랄을 넘은 까닭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특별열차를 타고 '19세기식 여행'으로 우랄산맥을 넘어 푸틴을 만났다. 이번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은 정치현실주의 시각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치현실주의는 국제관계를 이해하는 분석틀의 하나로 국제사회를 지배하는 근본원리는 힘이며, 힘의 본질은 바로 완력(force)이라는 시각이다. 정치현실주의에서 국력은 경제력과 군사력이 결정적 변수로 작용하고, 윤리와 도덕, 이성과 양심은 한갓 형식에 불과하며 이익과 효율을 중요하게 여긴다.

지난 1월 부시정권 출범 이후 미국은 클린턴 시절의 대북 유화정책에서 180도 전환하여 강경노선으로 급선회했다. 부시정권의 대북 정책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1994년 북미 제네바협정을 실천할 것, 둘째 미사일 개발 및 수출을 금지할 것, 셋째 북한의 재래식 무기를 감축할 것 등이다.

첫째와 둘째 요구는 국제사회의 압력에 입각하여 큰 문제가 없으나 셋째 것은 그야말로 북한의 생존전략이 달린 차원의 것이다. 사실 세계 제4위의 생화학 무기를 보유한 북한의 핵무기를 유보시킨 상황에서 재래식 무기마저 감축하라는 미국이 북미 대화재개를 요청해오자 북한의 김정일은 부인도 시인도 않은 채 고육지책으로 러시아의 푸틴에게 열차로 달려간 것이다. 이른바 탈냉전체제 후의 러시아, 중국, 북한의 신삼각체제를 형성, 미국을 압박하려는 것이다.

김정일의 방러에서 괄목할 사항은 크게 두가지이다. 하나는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연결하는데 합의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의 미군철수주장을 푸틴이 이해한다는 모스크바 선언이다.

작년 7월 푸틴이 평양에서 발표한 공동선언에서 언급이 없었던 미군철수문제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에 미룰 수 없는 초미의 문제라고 못박은 모스크바 선언은 바로 국제정치의 정치현실주의가 드러난 단적인 예다. 즉 작년 6월15일에 남북정상간에 맺은 6.15 평양선언을 퇴색시키고 휴지화시킨 이번 모스크바 선언은 국제간에 도덕이니 약속이니 하는 것이 상황과 필요에 따라서 언제든지 파기될 수 있다는 무질서를 웅변한다고 보아야한다.

우리 정부는 언필칭 기회있을 때마다 미군의 존재를 북한이 양해하는 것으로 공언했는데 일년 조금 지나서 정상간의 약속이 식언과 공약으로 변했으니 기만당했다고 분개할 법 하지만 국제관계의 본질자체가 그러니까 흥분할 것도 없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할 사실은 이번의 모스크바 선언으로 남북관계가 호전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푸틴과 김정일이 철도 연결에 합의함으로써 아시아와 유럽을 육로로 연결될 수 있게 됐다. 예컨대 부산에서 네덜란드의 로테르담까지 물류시간이 26일에서 16일로 단축되고, 연간 50만개 이상의 컨테이너를 수송할 것으로 전망되며, 컨테이너 한대당 약 800달러의 탁송비를 절감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현행 극동에서 유럽까지 물류기간이 해상으로 4~6주 소요되는 것을 10여일로 단축할 수 있고, 물류비용도 거의 3분의2를 절감할 수 있는 엄청난 효과를 기대케한다. 뿐만 아니라 북한과 러시아가 보게될 막대한 통과료 징수로 인한 국익과 국부창출은 푸틴과 김정일 모두에게 큰 수확을 가져다 줄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 철도, 즉 경의선이 개통되는 것을 염두에 두고 푸틴이 김정일의 미군철수 주장을 양해한 것으로 보아야한다. 단 여기서 전제되는 것은 남북관계의 복원이다. 그런데 한가지 더 놀라운 것은 일본이 발표한 부산~일본간 해저터널의 개설 구상이다. 일본은 세계최장 70km짜리 수중철로를 해저 150m에 깔아서 일본에서 한반도를 거쳐 유럽으로 달려갈 유라시아 횡단철도를 창설한다는 계획을 입안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이 우랄산맥을 20여일에 걸쳐서 기차로 넘나들며 맺은 공동선언이 실천만 된다면 우리에게도 불리할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우리도 일본의 총알열차를 타고 김정일처럼 우랄산맥을 넘을 날이 이제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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