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강행을 놓고 태평양전쟁 피해당사국인 중국 등 아시아 국가는 비난성명을 발표하고 항의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 국가는 공식논평을 자제하는 등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중국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중국 정부와 인민은 (이번 참배에 대해) 강력한 불만과 분노를 표시한다"고 밝히고 "이 같은 잘못된 행동은 중.일 관계의 정치적 기초는 물론 중국 인민과 다른 아시아 희생자들의 감정을 해쳤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외교부 성명은 고이즈미 총리가 참배 전 평화를 약속하고 유화적인 발언을 한 점과 참배 날짜를 당초 패전기념일인 15일에서 13일로 바꾼 점을 강조하고, 보복조치도 언급하지 않아 중국이 과격한 대응은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관영 신화통신은 이날 논평기사를 통해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 강행은 일본 우익분자들의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필리핀의 '릴라 필리피나'를 비롯한 일본군 위안부 지원단체는 이날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를 비난하고 일본 정부가 2차 세계대전 당시 필리핀 여성을 비롯한 희생자들을 상대로 저지른 범죄에 대해 완전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릴라 필리피나의 솔 라피수라 대변인은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는 필리핀에서 여성들을 강간한 일본 군인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행위"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말레이시아의 항일단체 소속 회원인 로케 투 상씨는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에 대해 "한 손으로는 천사와 악수하면서 다른 손으로는 악마의 손을 잡는 행위이며, 말로는 평화를 얘기하지만 살인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호주 최대의 재향군인단체인 귀환병모임(RSL) 회장인 피터 필립스 예비역 소장은 "비록 패전기념일을 피했다해도 전범의 위패가 있는 신사를 일본 총리가 참배했다는 점에 대해 실망했다"면서 "참전자들은 아마도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 참배를 국수주의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국무부는 13일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에 대한 한국, 중국 등 주변국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 일절 논평을 하지 않았다.
필립 리커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국무부 정례브리핑에서 일본총리의 신사참배에 대한 기자들의 논평 요구에 "논평할 것이 없다"고 밝혔다.
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13일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요구에 대해 "그런 사안에 대해 언급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으며 영국 외무부 대변인 역시 이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다. 반면 유럽 언론 매체들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방문과 한국 등 주변국의 반응을 비중있게 보도했다. 영국 BBC방송은 "일본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한국과 중국 등 이웃나라들이 격분, 한국의 일부 민족주의자들이 새끼손가락 마디를 잘라 항의했고 중국은 비난성명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도 일본 제1야당인 민주당 대표로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를 극구 반대해온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대표가 쓴 '그릇된 추도'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13일자에 실었다. 프랑스의 르 몽드는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 결정으로 일본이 한국 및 중국과의 외교적 갈등으로 빠져드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고 지적했다.
류승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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