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성독립지사 고 김락여사 건국훈장 추서

일제때 시아버지와 남편.아들 3대에 걸친 항일 독립운동을 뒷바라지하고, 자신도 예안의 3.1운동을 지원하다가 왜경의 고문 끝에 두눈까지 실명한 안동 독립운동가 집안의 맏며느리가 뒤늦게 공로를 인정받게 됐다.

화제의 주인공은 퇴계 13대손으로 구한말 의병장인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건국훈장 독립장) 선생의 맏며느리이자 상해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처제인 김락(金洛) 여사(1863~1929).

김 여사는 일제의 국권침탈에 항거해 민족자존을 드높인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광복 제56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된 것.

'일제경찰극비본 고등경찰요사 폭도사편집자료' 제1장 총설 제2쪽에는 '김락 여사는 안동 양반가 이중업(李中業)의 아내로 대정 8년(1919년) 3.1 만세운동 소요 당시 일본 경찰수비대에 끌려가 취조 도중 두눈을 실명당해 11년간 고초를 겪다가 소화 4년(1929 년) 2월에 사망했다'고 기록돼 있다.

김씨의 시아버지인 향산 선생은 을사보호조약으로 나라가 망하자 단식투쟁에 들어가 24일만에 68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남편 이중업 선생(애족장)은 안동 3.1운동과 파리만국평화회의에 보내는 독립청원운동을 주도했다.

아들 동흠(棟欽).종흠(棕欽) 형제도 군자금 모금에 연루돼 두번씩 투옥되는 등 김씨는 시아버지와 남편.아들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친 독립운동 내조에 평생을 바쳤다.

지난 86년 국내 최초로 '3대 독립유공가문'으로 지정됐던 김 여사의 시댁에 못잖게 친정도 독립운동 명문가. 친정 오빠 김대락(金大洛) 선생 역시 만주로 망명한 독립운동가다. 시댁.친정.형부댁.사위 집안 등에서 배출한 독립지사만도 27명에 이르러 온 집안과 문중이 집단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증손자 이동석(57.안동청년유도회 전 회장)씨는 "증조모의 공적까지 상신할 뜻은 없었지만, 여성독립운동사를 밝혀야 한다는 김희곤 교수(안동대)의 권유를 따랐다"며 "이제야 후손의 도리를 다한 것 같다"고 추서 소감을 밝혔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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