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항일전선에는 양반가의 부녀자도 열외일 수가 없었다. 3대에 걸쳐 7명의 독립운동가를 낸 안동의 이동석(李東奭.57)씨 가문에서 다시 안동지역의 첫 여성 독립지사가 탄생했다.
이씨의 증조모인 김락(金洛.1863~1929) 여사가 올 광복절을 맞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된 것. 김락 여사는 일제에 항거해 단식.순국한 구한말 의병장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 선생(퇴계의 13대손)의 맏며느리로, 파리만국평화회의 독립청원서운동을 주도하다 군자금을 모아 중국으로 가던중 객사한 남편 이중업(李中業)과 독립군자금 모금사건에 연루돼 두차례나 옥고를 치른 아들 동흠(棟欽).종흠(棕欽) 형제 등 3대의 독립운동 내조에 헌신한 장본인.
여사는 1919년 예안의 3.1만세운동 지원 사실이 발각돼 일본경찰수비대의 모진 고문끝에 두눈을 실명한채 출옥, 11년간 온갖 고초를 겪다가 1929년 운명했다. 여사의 친정 오라버니인 김대락(金大洛) 역시 만주로 망명한 독립운동가이다. 상해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은 여사의 형부가 된다.
시가와 친가(임하 천전), 형부댁(임청각), 사위 집안(서후 금계 학봉종가), 손부 친정집(봉화 해저 김해댁)을 합하면 정부가 인정하는 독립지사만도 27명에 달한다. 집안이나 문중이 이처럼 집단적으로 독립운동 전선에 투신한 예는 유례없는 일이다.
이번 김락 여사의 독립운동 공적사실(일제경찰극비본 고등경찰요사 폭도사편집자료 제1장 총설 2쪽)상신은 안동대 김희곤 교수(사학과)의 적극적인 권유에 따른 것이다.
여사의 증손자인 이동석씨는 "이미 가문의 독립운동사가 대다수 밝혀진 이상 증조모의 공적까지 상신할 뜻은 없었으나 여성독립운동사에서 가지는 의의를 강조하는 김 교수의 강권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며 "이제야 후손으로서의 도리를 다했다"고 밝혔다.
고난의 시대. 순찰함이 따로 설치된 향산가(響山家)에는 일경이 무시로 출입을 하며 집안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대문에는 붉은 X표를 쳐두고 외부인과의 접촉을 봉쇄했다. 끝이 보이지 않은 가문의 고초와 파산. 그것은 곧 안동의 독립운동사였다. 민족의 수난사였다.
일신과 가문의 안위를 버리고 조국독립에 헌신한 한 집안의 숭고한 애국애족정신과 3대의 독립운동 뒷바라지에 눈까지 잃어버린 여성 독립지사의 소리없는 통곡이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과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로 얼룩진 광복 56돌을 울린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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