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 북부지역에 문학기행 붐

경북 북부지역에 드디어 문학기행 붐이 일고 있다. 교양인을 지향하는 대학생들의 방학 중 답사는 물론이고, 자녀와 함께하는 가족여행, 색다른 문화체험 길에 나선 관광객 등 다양한 발길들이 이어지고 있다.

지역엔 전통마을, 유서 깊은 고가, 휴양지 등이 잘 어울려 있어, 이를 연계시킨 문학 테마기행은 인간의 원초적 망향심까지 충족시켜 주고 있어 더 인기. 이에 발맞춰 시청.군청들은 문인들의 생가 복원, 문학관 건립, 지역 출신 문인 초청 등 '문학 자원' 진흥에 애쓰고 있다.

◇특출한 자원과 진흥 노력 = 경북 북부에는 곳곳에 문인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고, 곳곳이 작품의 배경이 돼 있다.

안동에는 육사 이원록, 농암 이현보, 퇴계 이황 등의 체취가 남아 있다. 영양은 지훈 조동탁, 문학잡지 '시원' 발간자이자 시인인 일도 오희병, 소설가 이문열, 요절한 천재 시인 세림 조동진, 항일 시인 이병철, 시인 이병각의 고향. 청송 진보는 소설가 김주영의 고향이자 소설 '객주'의 배경이 된 곳이다.

이에 영양군청 경우, '문학 자원'을 특화하기 위해 지난 5월 이문열씨 고향인 석보면 두들마을에 10여억원을 들여 '광산문학연구소'를 지었다. 이에 이씨도 매월 셋째 주에 일주일 정도 이곳에 머물면서 '이문열과 함께하는 소설 교실'을 열어 찾아 오는 문인.탐방객과 격의 없이 대화하고 있다. 영양군청은 그 외에도 문학자원과 역내 휴양지를 연결시킨 '문학 테마관광' 프로그램을 내놨고, 전담자 혹은 지역민으로 안내 도우미를 활동시키고 있다.

그 덕분에 이 문학관 개원 석달 사이에 벌써 서울 인터넷 동우회 '리더스', 대구 반월문학회, 상주 문인협회, 국민대 건축대학원생, 안동·경주지역 여고생들, 전국 대학 국문학과 학생 등 2천명 이상이 이곳을 찾았다.

◇문학기행의 한 사례― '자녀와 함께 하는 문학여행'

대구 흥사단은 지난 11, 12일 이틀간 이문열.조지훈.오일도.이육사.이현보 등의 문학 유적지를 돌아 보는 문학체험 기행 '자녀와 함께 하는 문학여행'을 마련했다. 참가자는 40여명.

이들은 먼저 광산문학연구소에 들러 대구지역 계간지 '생각과 느낌'의 편집 위원인 노진화(여·38)씨로부터 이문열의 작품 세계 등에 대한 강의를 들은 후, 이씨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고향 두들마을을 돌며 작가의 문학 세계를 간접 체험했다.

어스럼 저녁노을이 물들 즈음 이들은 한시간여 거리에 있으면서 천혜의 자연 경관이 고스란히 보존된 수비면 수하 청소년수련원으로 옮겨 풀벌레 소리와 벗해 초가을 밤이 이슥토록 얘기 꽃을 피웠다.

기행 이틀째엔 일월면 주실마을 조지훈의 생가, 영양읍 감천마을 오일도의 생가를 돌았고, 입암면 연당리 서석지, 안동댐 이육사 시비, 도산면 농암 선생 유적지 등을 방문했다. 이 기행에는 대구소설가협 윤장근 회장이 동참해 문학 세계를, 영남대 사회학과 이창기 교수가 전통마을에 대해 이해를 돕기도 했다.

참가자인 강형준(17·경산 무악고 2년)군은 "책이 아니라 작품.작가의 현장을 직접 체험할 수 있어 즐거웠다"고 했다. 대구 흥사단 권위정(여·30) 기획부장은 "문학.자연.전통마을 등을 한꺼번에 체험할 수 있는 전국적으로도 흔치 않은 테마관광지"라며 영양을 칭송했다.

◇앞으로 더 필요한 일들 = 하지만 풍부한 문학자원 만큼 기행을 진흥시킬 장치가 완비되지 못한 것은 앞으로 보완해 나가야 할 과제로 대두돼 있다.

출신 문인들의 작품.삶을 더 꿰뚫어 안내할 전임 도우미가 없는 것도 그 중 하나. 영양군청 경우 김수용(46) 문화담당이 나서서 답사 계획을 사전 통보해 오는 단체들 중심으로 안내해 왔고, 최근에야 전담 도우미 1명을 배치했을 뿐이다. 또 문인 출신 마을에서는 문중 대표 등이 돕도록 하고 있으나 체계적이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광산문학연구소 가동 방식에 대해서도 이견이 제시되고 있다. '소설 교실' 참가자 외에는 숙박이 쉽잖도록 돼 있으나, 건립에 공공 재정이 들어 간 만큼 활용도를 더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영양 외엔 안동.청송 등이 연계 진흥에 소극적인 것도 한계로 지적됐다. 탐방객 김병호·최연희(마산)씨 부부는 "시군청 홈페이지를 봐도 안내가 없더라"고 아쉬워 했다. 대구소설가협 윤장근 회장은 "안동.영양.청송의 시군청들이 힘을 합쳐 테마관광의 기반을 확충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영양.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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