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광복절이다.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와 '광복의 노래'가 울려 퍼질 것이다. 이윽고 만세삼창의 우렁찬 함성, 그리고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이날의 민족사적인 의미 따위는 깡그리 잊고 하루하루의 일상에 묻히게 될 것이다.
친일파 문제나 이와 관련된 민족의 진로는 정당과 정파의 이해관계에 뒤얽혀 슬그머니 뒷전으로 밀려난다. 언필칭 '민생'문제가 우선이란다. 그러나 민족관과 국가관이 제대로 서있지 않은 상황에서 '민생'이란 모래밭 위의 가건물이 아닐까.
친일파 문제는 언론계에서 연례행사처럼 삼일절과 광복절 이틀 동안만 관심을 가져주는 선심의 하사품처럼 전락했다. 더구나 올해는 세무사찰에 깊숙이 관련된 중요 언론사들이 공교롭게도 '친일 언론' 논쟁에 뒤얽혀 그나마의 지면이라도 할애할지, 설사 그런다 해도 그 주장이나 초점이 올바를지 관심거리다.
민족과 국가의 생존권은 논쟁이나 의견 수렴 대상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는 '민족과 국가' 단위로 생존권을 영위해 왔으며 앞으로도 당분간 그럴 것이다. 다국적 기업의 신기루 같은 달콤한 유혹에도 불구하고 역시 '국민국가'의 소속 단위로 해당 회사의 이익이 가장 많이 돌아간다는 점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국민 생존권의 기본인 주권과 국토의 방위는 토론 대상이 아닌 절체절명의 방어 가치 개념이다. 이를 지키는 쪽은 애국이고 포기하거나 배신하는 것은 매국임은 다수 의견이나 압력단체의 강요, 혹은 막강한 언론과 선전선동, 교묘한 논리와 아름다운 말솜씨, 강력한 통치술 등등으로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개념이다. 이것은 세계 어떤 '국민국가'도 변함 없는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正體性)으로 자리매김 하고있다.
이 말은 곧 다른 어떤 나라의 이익을 위하여 자기 민족과 국가의 이익을 손상시키는 여하한 행위도 친일파에 못지않는 반민족적인 행위일 수 있다는 주장과도 통한다. 예를 들면 미국이나 중국의 이익을 위하여 우리의 희생과 손해를 감내하는 행위 역시 친일파에 못지않는 반민족행위일 수 있다는 가설이 성립한다.
친일파 문제를 지금 거론할 필요가 있느냐, 그건 케케묵은 역사의 쓰레기 하치장이 아니냐고 주장하는 데 대한 반론에 대한 응답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친일파 청산이 안 된 상황에서 세계화의 격랑을 헤치고 '민족과 국가'의 생존권 쟁탈전에 뛰어들 지도력이 나올 수 있을까. 세계사는 언제이고 제2, 제3의 친일파(혹은 친X파)가 나오도록 '국민국가'간의 생존권 투쟁이 더욱 격렬해지고 있으며, 이런 격랑 속에서 국가의 위기를 막는 최선의 방법은 애국자와 매국노에 대한 객관적이고 설득력 있는 상벌의 원칙을 철저히 세우는 일일 것이다. 이게 흐리면 다른 모든 분야는 부정과 부패로 얼룩질 수밖에 없음은 불문가지다. 국가의 기본 가치가 서 있지 않은 데 무슨 정의와 진리가 설자리가 있을 수 있겠는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추진하고 있는 가칭 '친일인명사전'에 들어 갈만한 인사는 잠정적으로 3천명도 안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이 적은 숫자를 위해서 압도적인 다수 국민들이 왜 망설이며 친일파 청산을 두려워 하고 국론분열 운운하는 것일까. 구체적인 건 아직 미지수이나 항간에 떠도는 '대부분 친일파'식이라는 세칭 '친일 대세론'으로 괜히 가슴 졸였던 절대 다수의 '가상의 친일파 피해 망상'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이번 광복절은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다짐을 할 수는 없을까. 오히려 이제는 떳떳하게 우리 조상의 과오를 씻기 위해서도 친일파 청산은 필요하다며 이 운동에 앞장설 때 우리는 제2의 해방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문학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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