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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새 장편소설...기존 문체.이념서 파격 변신

중진작가 김원일씨와 중견작가 박일문씨가 새 장편소설을 냈다. 영남대 출신으로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작가이기도 두사람은 선배가 후배의 출품작을 심사한각별한 인연을 지니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이번에 내놓은 소설도 각기 자신의 기존 작품세계에서 보면 '파격'이요 '극복'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또한번 묘한 연관성을 드러낸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분단문학 작가로 흔들림없는 문학의 길을 걸어온 김원일의 새 장편소설 '슬픈 시간의 기억'(문학과 지성사)은 사설 양로원에서 지내며 죽음을 맞는 네 노인의 이야기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속에 청춘을 보낸 불행한 세대의 노년을 의식과 잠재의식의 중첩을 통해 형상화한 연작 장편소설이다. 우리시대가 살아온, 또 살고있는 그늘진 얼굴들의 자화상이랄까.

작가는 네편의 연작을 통해 우리 모두가 거쳐야 할 삶과 죽음사이의 비의(非義)를 꿰뚫고 있다. 그것은 인간존재의 본원적인 의문이며, 현실적 사안에대한 고백이기도 하다. 여성 주인공을 내세워 관능적이며 섬세한 문장을 구사한 것 자체가 굵고 큰 스케일의 김원일에 있어서는 파격이 아닐 수 없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1992년)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며 국내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을 몰고왔던 박일문의 새 장편 '도망쳐'(좋은날 출판사)는소설의 부제 그대로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다.작가가 여기서 지금까지 추구해온 비판적 마르크시즘이나 자유주의적 존재론을 넘어서려 한다. 마르크시즘의 강 건너편에 서서 '흑도'라는 인물을 내세워마르크시즘의 경직성에 조롱을 보내며 아나키즘의 유연성을 노래하고 있다.

'흑도'는 누구에겐가 무엇엔가 구속되는 것도 싫지만, 누군가 무언가를 구속하는 것도 거부한다. 가부장적인 맥락이 드리워진 낭만적 연애관조차거부하며 물적 소유개념도 없다. 내 여자, 내 집, 내 가정, 나의 국가, 나의 민족이란 개념도 없다.

아나키즘적 사유를 가진, 들뢰즈(프랑스 철학자)의 정신분열증(스키조프레니아)적 인간으로 등장하는 흑도를 보면, 중심과 구조와 질서와 안정을거부하며 끝없이 도망치고 싶은 작가의 내면을 들여다 볼수 있다.

소설의 무대도 대구다. 명덕로터리가 나오고 그가 등단한 매일신문사가 나오고, 향촌동 고구마 식당과 동성로 란다방도 등장한다. 전통적으로 아나키즘이 강한 도시였던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며 형설출판사에서 나온 아나키즘 서적을 많이 읽었던 작가의 사유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작가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좬암담하지만, 이제 자본주의로 역사주의 시대는 끝이났다좭면서도 희망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 대안이 바로 아나키즘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꼭 '무정부주의'라기 보다는 '자율주의'이기도 하다. 어떤 역사적 조건에서 살건,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아니키적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 아닌가. 박일문이 '스키조플레니아' 즉 '도망치는인간' 흑도의 삶을 빌려 하고싶은 얘기는 그런게 아닐까.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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