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부, 원폭 피해자 지원 약속 '부도'

10년전 한·일 양국이 한국인 원폭피해자를 위해 공동 부담형식으로 지원키로 한 기금조성 약속이 한국정부가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바람에 피해자 당사자를 비롯한 국민들의 비난을 사고 있다.

지난 90년 5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일본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의 진료지원과 복지회관 건립·운영, 노후·건강·생활안정을 위해 일본 정부가 40억엔(한화 250억원 가량)을 지원하고, 우리 정부도 '상응하는 금액'을 내놓키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91년 97억원, 93년 151억원 등 두 차례에 걸쳐 약속한 40억엔의 지원금을 대한적십자사에 전달했고, 이 자금으로 정부는 '원폭피해자복지기금'을 조성, 대한적십자사 관할로 각종 지원사업을 해왔다.

정부는 원폭피해자들(3월말 현재 2천196명)에 대해 매월 건강진단비(1인 2만원), 진료보조비(1인 10만원)와 진료비, 장제비(1인 150만원) 등을 지원했고, 원폭피해자 복지회관 운영비용으로 사용해왔다.

반면 우리정부는 양국간 피폭자 지원금 지급을 약속한 '재한 원폭피해자 지원을 위한 일본국 정부 갹출금 사용에 관한 가이드라인'의 법적 구속력이 없고, 일본정부의 권유사항이라는 이유로 40억엔 상당의 지원약속을 10년이 넘도록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가이드라인'에 따라 올해까지 지원한 예산은 92년 1억원 이후 매년 9억원 수준으로 모두 50억여원에 불과해, 당초 약속한 지원금에 턱없이 못미치는 수준이다.

이로 인해 일본 지원금으로 조성한 원폭피해자복지기금은 현재 잔액이 109억원에 불과, 각종 사업에 연간 40억~50억원이 들어가는 점을 감안하면 2003년쯤 기금이 바닥날 전망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매년 사업우선순위에 밀리다 보니 충분한 예산확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올해도 9억1천300만원을 책정했지만 내년에는 20억원으로 확대 편성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원폭피해자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의 김동률 사무국장은 "자국의 원폭피해자에 대한 지원약속조차 어긴 우리정부가 일본정부에 대해 종군위안부 보상, 왜곡교과서 불채택, 신사참배를 거론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해보인다"고 비난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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