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이면 예외 없이 동해 연안을 찾아드는 불청객 '냉수대'. 올 여름에도 벌써 4차례나 발생했다. 연안 어획량 감소를 불러 와, 가뜩이나 선원난 등으로 어려운 어민들의 생계마저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뾰족한 대책도 없으니 더 답답한 일◇이상한 현상들=최근 몇년 사이엔 오징어가 오히려 서해에서 더 많이 잡히는 기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동해의 냉수대 탓. 반면 동해에선 고기가 잡히지 않다보니 피서철 활어 값도 덩달아 올라 바다까지 와서도 회 맛조차 보지 못하고 돌아가는 피서객도 적잖았다.
포항에서는 감성돔 같은 바닷 고기들이 민물에 출현, 낚시꾼들이 줄을 잇고 있다. 형산강 하구로 거슬러 올라 취수탑 하류 보 밑까지 다가 드는 것. 15일 경우 송도동 방사제 앞에는 100여명이 나와 낚시를 하고 있었고, 연일읍 연일대교 밑에도 50여명의 강태공들이 고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주 한번씩 이곳에 낚시 나온다는 김형석(48.포항시 해도동)씨는 "근래 바닷물이 차가워지면서 고기들이 전보다 더 많이 올라오고 있다"고 했다. 이 지점에서는 연중 잡히는 숭어 외에도 최근엔 감성돔이 많이 잡히고, 그 외 황어.전어 등 어종도 다양하다는 것.
고기가 많다는 소문이 나자 경주의 박만용(55)씨는 아예 투망까지 하러 왔다고 했다. 이같이 바닷고기가 강을 상당 길이나 거슬러 오르는 것은 바닷물이 차갑기 때문일 것이라고 주위에서는 보고 있다.
◇수온 차 무려 10℃나=주변 해역보다 5℃ 이상 차가운 바닷물이 연안에 나타나는 자연현상이다. 주로 7월 초에 시작해 소멸.발생을 반복하다 8월 말쯤 거의 소멸한다.
수산진흥원은 냉수대가 형성되면 그 해역에 주의보를 내리고, 확산되거나 급변할 것으로 보이면 경보까지 발령해 주의토록 하고 있다.
올 들어 냉수대 주의보가 발효된 것은 모두 4차례. 지난달 4일 구룡포~기장(부산) 사이의 연안 바닷물의 중심 온도가 14.2℃로 떨어져 첫 주의보가 내려진 것을 시작으로, 포항, 감포~영덕, 기장~일광 등 해역에 잇따라 발효됐었다.
올해 나타난 냉수대의 수온은 작년 최저온도 10.5℃보다는 높은 편. 적도 부근에서 발생한 강한 난류대가 북상한 탓으로 판단돼 있다. 그러나 피해는 마찬가지였다. 상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근해 수온이 27~30℃로 평년보다 2~3℃ 높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엔 냉수대와의 온도차가 10℃ 이상으로 벌어져 예년과 다를 것 없는 피해가 생기는 것이다.
냉수대가 생기는 이유는 밝혀져 있다. 여름철이 돼 남서 혹은 남동 계절풍이 24시간 이상 계속해 불면 연안쪽 표층의 따뜻한 물이 먼 바다쪽으로 밀려 나가기 때문이라는 것. 이때는 대신 아래층 냉수가 표층으로 올라 오는 것이다. 때문에 냉수대는 바람의 방향.강도, 연안의 형태 등에 따라 그 규모가 달라진다.
◇어떤 피해가 발생하나?=냉수대가 닥칠 때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곳은 육상에 만들어 둔 양식장들이다. 앞바다에서 물을 끌어다 쓰기 때문에 차가워진 물의 피해가 바로 발생하는 것이다. 갑작스런 수온 하락은 키우던 물고기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면역성을 떨어뜨려 질병을 앓게 되거나 집단 폐사에 이르기도 한다.
매년 여름이면 울진.영덕.포항.부산 등 동해변 육상 양식장 운영자들은 냉수대로 적잖은 피해를 입고 있다.
앞바다 고기잡이 피해도 막심하다. 고기가 도망가기 때문. 대표적인 것이 따뜻한 물을 좋아하는 오징어이다. 냉수대가 형성되면 오징어들이 따뜻한 물을 찾아 멀리 근해쪽으로 가버린다. 예년보다 일찍 냉수대가 형성된 울진 연안 경우 지난 6월 한달간 오징어 잡은 양이 505t(10억9천만원)에 불과했다. 이는 작년의 758t(14억원)보다 33.4%나 준 것.
울릉도 연안의 표층 수온도 최근 15.2~21.9℃로 떨어져 작년보다 최고 3.6℃나 낮아졌다. 더욱이 냉수대가 장기간 계속되자 오징어가 안잡혀 울릉도 전체가 위협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피해가 심각한 것은 양식장도 마찬가지. 작년 8월 부산 기장 일대에서 발생했던 전복 20만마리 집단 폐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 피해액은 3억8천여만원에 달했다.
냉수대는 해수욕장 경기에도 영향을 미치고 해수욕객의 심장마비를 유발하기도 한다. 심지어 선박 항해에도 피해를 준다. 심해에서 올라 온 찬물이 더운 공기와 만나면 안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점도 있다=그러나 냉수대가 완전히 '나쁜 놈'만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고기들이 영양분을 모두 먹어 버려 텅비어 있던 표층에 심층수가 올라 오면서 영양분을 공급하게 된다는 것. 표층에서 물고기 씨가 마르지 않고 계속 생겨나는 것에는 이 거대한 자연의 순환작용이 한몫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마치 태풍이 재산상 손실 등 많은 피해를 야기하면서도 쓰레기 등 바다 정화 역할을 하는 긍정적인 면이 있는 것과 같은 셈이랄까.
하지만 아직까지 냉수대 형성을 막거나 예방할 방법은 제시된 게 없다. 그저 조기 발견과 주의로써 피해를 줄이는 것이 최선. 육상 양식장에선 사육 밀도를 낮추고 사료 공급량을 줄이는 등의 방법으로 고기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려 노력한다.
수산진흥원 서영상 연구관은 "현재로선 뾰족한 대책이 없다. 다만 조기에 감지, 피해를 줄여 나가는 수밖에 없으며 장기적으론 이상 기온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울진.황이주기자 ijhw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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