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꿈과 현실을 극명하게 대조한 베틀노래
길쌈의 가장 중요한 작업이 삼삼기와 베짜기이다. 삼삼기는 여럿이 둘러앉아 둘계(두레삼)를 할 수 있어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도 하면서 삼삼기의 무료함을달래고 시집살이의 고통에서 해방감을 누리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베짜는 일은 집안에서 베틀에다가 몸을 묶고 혼자 고독하게 해야 하는 퍽 고단한 일이다. 베틀 위에 앉으면 허리에는 부테를 두르고 배에는 말코를 차며 발에는 끌신을 신고 두 손에는 각각 북과 바디집을 쥐고 쉴 새 없이 온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베를 짜고 나면 좥사지 육천마디가 안 아픈 데가 없다좦고 말한다. 이런 고달프고 부자유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베틀노래에서는 베짜는 이가 스스로 선녀가 된다. 나라의 온갖 일을 두루 챙겨야 하는 대통령 자리도 아마 이처럼 고독하고 부자유스러우며 고달픈 자리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나 처음 그 자리에 앉을 때는 모두천상선녀가 된다. 베틀노래를 들어보자.
바람이 솔솔 부는날/ 구름이 둥실 뜨는 날에
월궁에서 노던 선녀/ 옥황님께 죄를 짓고
인간으로 귀양와서/ 좌우를 살펴보니
할 일이 전혀 없어/ 베틀 놓세 베틀 놓세
단양 사는 배득이 할머니 소리인데, 베틀노래의 전형적인 서두를 가장 잘 갖추고 있다. 잠을 쫓으서 하는 삼을 삼는 어려움과 시집살이의 고난을 토로하던삼삼기 노래와는 전혀 딴판이다. 하늘 나라에서 놀던 선녀가 지상에 내려오니 할 일이 전혀 없어 베틀이나 놓고 베나 짜보자는 식이다. 선녀들의 소일거리가 곧 베짜기이며, 베를 짜는 자신은 곧 천상에서 하강한 선녀들과 동일시된다. 삼삼기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을 하면서도 자족적인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었던 것은 혼자서 고독하게 베를 짜야 하는 까닭이다. 아무리 자신의 고달픈 처지를 토로해 봐도 들어줄 사람이 없다. 노래를 부르고 듣는 이는 오직 베짜는 이 자신뿐이다. 따라서 혼자 있을 때라도 자신의 존재를 한껏 미화시키고 자신의 일을 대단한 것으로 의미 부여한다면 자족적 긍지를 지닐 수 있다. 베틀노래는 특히 자족성이 강한 노래이다.베틀 위에 앉은 애기/ 천상선녀 아니든가
앉을개라 앉은 양은/ 우리나라 상감님이
용상 좌정 하신듯고/ 허리부테 두른 양은
쌍무지개 두른듯고/ 말코라 찼는 양은
천년과부 유복자 얻은듯고/ 저질개 거동 보소
강태공의 낙수댄가/ 물이 철철 넘나드네
갖은 비유가 다 동원되었다. 베짜는 여인이 천상선녀로 비유된다. 앉을개에 앉은 대단찮은 모습도 임금님이 용상에 좌정한 듯 노래한다. 베틀에 오르면 허리에는 부테를 두르고 배에는 말코를 찬다. 부테(부티)는 넓은 허리띠로서 허리에 맞도록 둥글게 휘어져 있다. 따라서 이 모습을 두고 쌍무지개를 두른 것 같다고 노래한다. 배에다 차는 말코는 베를 감아서 갈무리하는 막대이다. 베를 계속 짜나가면 말코에 감긴 베가 점점 불어나므로 말코 찬 모습을 마치 천년과부가 유복자를 얻은 것처럼 반갑게 묘사하는 것이다. 베를 짜다가 방안이 건조하여 베가 마르면 저질개(젖을개)로 물을 적셔서 날실을 축여주어야 하는데, 이를 마치 강태공이 낚시질하는 것에다 견주어 노래했다.어느 하나 예사롭게 보지 않고 대단한 상상으로 최고의 비유를 이끌어내고 있다. 집권초 대통령의 모든 행적은 이렇게 훌륭한 비유로 미화되기 일쑤이다. 각료회의때 자유로운 토론을 했다는둥 미국 의회에서 영어로 연설했다는둥 모든 일이 아름답기만 하다. 그러나 베짜기가 진행되면서 다시 처해진 현실로돌아오지 않을 수 없듯이 대통령 임기의 진행도 같은 상황에 이르렀다. 도투마리 거동보소/ 늙으신네 병일는가
누었으나 앉었으나/ 절로 굽은 신낭구
헌신짝에 목을 매구/ 꼬박꼬박 늙어가네
베를 일정하게 짜며는 말코에 감게 되는데, 이때 도투마리에 감겼던 날실이 풀려지면서 도투마리가 넘어지기도 하고 일어서기도 한다. 이 모습을 마치늙고 병든 노인네가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가 누웠다가 하며 간신히 목숨을 지탱하는 상황으로 묘사한다. 신나무는 큰 활 모양으로 굽은 막대기인데 끝에 가는 신끈을 길게 매어놓고 헌신 한 짝을 달아놓으면 베짜는 이가 이를 신고서 당겼다 밀었다 하며 베를 짜게 된다. 허리 굽은 노인 마냥 헌 신짝에 목을 매고 오락가락하는 신나무의 모습도 처량하기 짝이 없다. 한결같이 서글픈 현실에 견주어 노래된다. 그럭저럭 베를 다 짰다.
은장도 드는 칼로/ 으르슬큰 비어다가
앞냇물에 아이 빨고/ 뒷냇물에 훼어다가
담장울에 널어 바래/ 옥 같은 풀을 해서
아당아당 두둘기어/ 임에 직령 지을 적에
은가위로 말려서 은바위로 지어서 은다리미로 다린 뒤에, 곱게 개어 자개함롱 반다지에 맵시 있게 넣어 놓고 대문 밖에 썩 나서니 서울 갔던 서방님이오신다. 오시기는 오시는데 상여 위에 명정공포 달고 온다.웬말이요 웬말이요/ 홍패백패 바랬더니
명정공포 웬말이가/ 원수로다 원수로다
서울길이 원수로다/ 서울길이 아니드면
좥우리낭군 왜 죽으리좦 홍패(紅牌)는 나랏님이 과거에 급제한 사람에게 주던 합격증서이다. 그러나 명정(銘旌)과 공포(功布)는 망자의 이름과 관직을쓴 기로서 장례행렬을 따르는 것이다. 홍패백패와 명정공포가 극단적인 대조를 이룬다. 서방님이 과거하러 서울길에 올랐다가 급제는커녕 상여를 타고돌아왔으니, 서울길이 원수일 수밖에 없다. 그 비극은 곧 베짜는 이의 것이다. 베틀에 처음 올라앉을 때 품었던 천상선녀의 꿈이 청상과부의 좌절로 나타난 것이다. 우리 정치 현실도 마찬가지이다. 정권재창출에 대한 집착이 자칫 선녀에서 과부의 나락으로 좌절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김대통령은 정권교체와 남북회담의 꿈을 이루고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으니 천상선녀나 다름없는 긍지를 가질 만하다. 그러나 무리한다수의석 확보와 지역인물에 의존한 권력안보 및 정권 재창출에 대한 집착 탓으로, 국민의 정부답지 않게 민심도 얻지 못하고 정치개혁도 이루지 못한 채, 남북관계는 다시 교착상태에 빠지고 극심한 여야정쟁에다가 경제위기까지 겹쳐 딱한 처지에 이르고 말았다. 야당의 탄핵 망언보다 오히려 여당 대선주자들의조기경선론이 사실상 집권말기를 재촉하는 좥명정좦구실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런 상황일수록 권력안보에 연연하지 말고 정치일정을 투명하게 밝히고 솔직한 정치로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야 한다. 일부 야당편향 인사들을 제외하고 아무도 대통령의 좌절을 바라는 사람은 없다. 최근 대통령 지지도가 바닥을 치고 오름새를 보이는 것도 야당의 지나친 비판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않는다는 반사심리가 작용한 까닭이다. 글쎄 어느 국민이 좥돌좦에서 좥물좦, 좥깡좦, 좥뻥좦으로 이어지는 대통령 시리즈를 진심으로 반길까. 지키지 못할약속은 아예 입도 뻥긋 말아야 한다. 지금처럼 국민들이 대통령의 말을 한갓 좥뻥좦으로 인식하는 한 정권재창출은커녕 정권안보도 보장하지 못한다. 국민을상대로 한 약속은 최소한 지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두 차례나 약속을 어기고 있는 국정쇄신 약속부터 지켜야 할 것이다. 핑계로 내세웠던 가뭄은 벌써지나갔으며 장마조차 끝났을 뿐 아니라 벌써 입추까지 지나가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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