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글로벌 프리즘-일본의 '못된 버릇'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참배가 국제적 비난을 불러 일으키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국가들은 정부차원의 공식적인 논평을 일절 피하고 있다. 인도주의와 인권을 외교원칙으로 표방해온 이들 국가의 '어색한 침묵'은 지금까지도 나치전범을 끝까지 추적해 재판정에 세우고, 유고내전의 전범들을 처벌하는 행태와는 사뭇 다른 태도들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일본이 과거사를 반성하지 못하는 '못된 버릇'을 길러준데는 태평양 전쟁 전범 처벌을 위한 도쿄 재판을 사실상 주관한 미국의 책임이 적지 않다.

1945년 11월 시작된 뉘른베르크 재판은 인류의 이름으로 나치당과 게슈타포를 범죄집단으로 규정했다. 반면 1946년 5월 미국의 일방적인 주도로 진행된 도쿄재판은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전 일본총리 등 7명의 A급 전범이외에는 어떤 조직도 범죄집단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A급 전범은 모두 국제재판에서 처리된 반면 B,C급은 모두 그들이 수용된 나라에서 처리하도록 해 독일의 경우 전범자들은 모두 독일 국민자신이 처형해야 했다. 그러나 도쿄재판은 A급 전범만이 법의 심판을 받은 까닭에 일본은 단 한명의 전범자도 자기 손으로 처형하지 않아도 됐다. 도쿄재판에서는 생체실험을 자행한 731부대와 히로히토 일왕에 대한 역사적 단죄도 이뤄지지 않았다.

뉘른베르크 재판이 인류의 정의를 실천한 '세기적 심판'이었던 반면 도쿄재판은 '실패한 재판'이 되고 만 셈이다. 도쿄재판에서 교수형을 받은 7명이외 무기 및 유기징역을 선고받은 전범자는 고작 18명. 그나마 이들 중 감옥에서 병사한 3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석방돼 일본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극우세력의 중심인물이 됐다.

만약 일본의 침략으로 미국의 여성들이 종군위안부로 끌려나가고 무고한 미국인들이 생체실험을 위해 '마루타'로 희생됐다면 도쿄재판은 어떠한 결말을 맺었을까. 또 미국이 우리나라처럼 군국주의에 철저히 유린당했더라면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일본 총리의 참배를 놓고 과연 침묵으로 일관할 수 있을까.

류승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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