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학급당 35명이하 낮추기 초고속 추진

'개선인가 개악인가'.정부의 교육여건 개선 계획이 초고속으로 진행되면서 교육계에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계획의 골자인 '학급당 인원수 35명 이하로 감축' 추진에 대해서는 여타 여건을 악화시키는 졸속 정책이라는 비난이 높다. 일부에서는 내년 선거를 의식한 '인기용'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할 정도로 심각한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대구 지역 추진 상황을 중심으로 문제점을 짚어본다.

▨시 교육청 계획=내년까지 고교, 2003년까지 초.중학교 학급당 인원수를 35명 이하로 낮추기 위해 신설과 증축을 병행한다는 방침. 정부의 당초 계획은 2004년까지 초.중학교 35명, 고교 40명이었으나 이번 계획으로 상황이 급박해졌다. 일정이 촉박한 고교는 50개교에 296개 교실을 증축하고 최근 개교한 고교의 여유 교실을 활용, 모두 337개 교실을 늘린다. 2004년까지 8개 고교를 신설할 예정이었으나 15개로 늘리고, 신설 규모도 30학급(학년당 10학급)에서 36학급으로 확대한다.

초.중학교는 내년 들어 교실 증축을 본격화할 예정. 신설 숫자는 2004년까지 초교 19개, 중학교 12개였으나 각각 3개와 1개교를 추가하기로 했다.

교실 증축을 위해 시 교육청은 지난 14일 고교 행정실장 회의를 열고 세부 방침을 지시했다. 학교별로 시행계획을 세워 입찰과 설계를 마치고 다음달 중 공사에 들어가는 내용. 공사비는 일단 착공에 들어간 뒤 신청하면 지원한다는 것이다.

▨계획 자체의 문제=다음달부터 내년 2월말까지 6개월도 안 되는 기간에 학교마다 4~10개 교실을 지어야 한다. 촉박한 공사기간도 문제지만 완공이 안 되면 과학실이나 컴퓨터실 등을 교실로 바꿔야 하는 게 고교로서는 큰 부담. 애써 마련한 특별실이 그렇게 사라지고 나면 실험.실습 등이 필요한 교과 교사들은 재미 없고 가르치기 힘든 이론 수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

기존 건물에 층을 올릴 수 있는 고교가 10개뿐인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40개 고교가 수평으로 교실을 짓거나 별도 건물을 지어야 하는 상황인데 이 경우 건물과 건물 사이, 건물과 담 사이에 짓거나 운동장 한 켠을 파고들 수밖에 없다. 학교내 건물 과밀, 운동장 축소 등이 불가피한 것. 서울이나 경기도의 경우 운동장 없는 건물 내 학교 신설도 허용하는 교육부로서는 운동장에 건물을 신축하는 게 문제될 리 없겠지만, 학생과 교사들로서는 보통 답답한 일이 아니다.

학교 신설의 경우 예정에 없던 11개교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부지를 확보하는 데 상당한 진땀을 흘려야 할 상황. 대구의 경우 외곽지를 제외하고는 학교를 지을 만한 땅이 거의 없어 신설학교에 배정되는 학생들에게는 통학길이 멀어질 수밖에 없다. 교육부는 운동장 없는 학교, 도심지 소규모 학교, 기존 학교 부지 내 2개교 건립 등을 적극 추진하라는 입장이지만, 그렇게 해놓고 교육여건을 개선했다는 얘기가 과연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7차 교육과정 시행에도 악영향=7차 교육과정 시행에 필요한 시설이 지금도 부족한데, 학급당 인원수 줄이는 데만 급급해서는 곤란하다고 교사들은 비판했다. 특히 2003년부터 7차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고교 2학년의 경우 선택 중심 교육과정이기 때문에 지금보다 훨씬 많은 교실과 부대 시설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계획으로 7차 교육과정용으로 늘려온 시설조차 학급당 인원수 감축에 뺏길 형편이니, 향후 몇 년 동안 7차 교육과정이 부실하게 시행될 가능성이 커진 것.

달서구, 수성구 등 학생들이 많이 사는 지역 고교의 학급당 인원수를 여타 지역보다 1, 2명씩 더 배정해온 시교육청 조치가 사라짐으로써 원거리 통학생이 늘 수밖에 없는 것도 문제. 대구의 경우 가뜩이나 다른 시.도에 비해 남녀공학 학교 비율이 낮아 통학 거리가 더 길었는데 학급당 인원수를 35명으로 뚝 떨어뜨리면 통학 거리는 그만큼 길어질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과밀학급 해소 마찰=초등학교의 경우 2003년까지 학급당 35명 이하로 감축하면 되지만 대구시 교육청은 올해중으로 45명 이상 과밀학급부터 줄이고 보자는 방침을 세웠다. 여유교실이 있는 학교는 학급을 늘려 2학기때 학반을 조정하라고 이달초 해당되는 학교에 공문을 내렸다. 그러나 교사들은 즉각 반발했다. 학기중에 학반을 바꾸면 학생들이 달라진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그만큼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고, 기존 학반마다 수업진도가 다른 부분을 조정하기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는 이유. 시 교육청은 결국 재검토하기로 했으나 정책 목표 맞추는 데 급급한 탁상행정이라는 비난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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