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제철만난 연꽃

◈넓은 잎 고개내민 연분홍 봉오리들

예로부터 산높고 물맑은 청도. 그 중에서도 청도 유등연지는 지금이 제철이다. 지난 겨울 얼음장 아래서도 듬성듬성 푸른 빛을 뽐내던 연당(蓮塘)이었다. 그때부터 기다려온 꽃 방석…. 실바람타고 흔들리는 초록빛깔 잎의 군무…. 거기다 시골아이 마냥 수줍게 몸을 숨기고 있는 연분홍 봉오리, 봉오리들…. 이제 제철을 만난 연꽃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다가오는 곳이다.

장맛비로 물이 불어난데다 흙탕물. 그러나 연꽃은 그 속에서 태어나 더러움에 물들기는커녕 더욱 해맑은 얼굴로 피어난다. 가슴이 허한 사람이나 혹은 남에게 자랑거리를 안고 있는 사람이나 모두가 연당 앞에서는 내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뽀얗게 씻겨 내려가고 만다. 잠시 한 낮의 고요에 잠겨보자. 가만히 바라만 봐도 향기가 전해진다. '꽃중의 군자'. 연꽃은 아무 말없이 시름을 달래준다.

▨ 청도 유등연지

"예년보다는 꽃이 적어. 잔뜩 가물다가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연꽃이 삭아버렸어". 낚싯대를 드리운 60대 초로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일러준다. "하지만 꽃들이 하루하루 달라져. 이달 말쯤이면 아마 볼만 할거야".

청도 화양읍 유등리 유등연지에는 분홍빛 연꽃이 산다. 자그만치 2만여평의 저수지가 온통 연꽃밭이다. 저수지에 들어서면 갑작스레 눈이 시원해진다. 초록색 파스텔화의 연속이다. 연잎에 가려 수면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연잎들이 어깨를 맞댄 채 목을 높이 뽑아 들고 있다. 그 연잎 사이로는 아직 반쯤 핀 연꽃이 있는가 하면 벌써 꽃술을 흩뿌리며 떨어지는 꽃도 있다.

둥글 넓적한 연잎은 뚝 따서 뒤집어 쓰면 작은 우산이 될 듯 싶다. 수면위로 대를 쭉쭉 뻗어 올린 연잎 위로 햇살이 내리쬔다. 실바람이 일때마다 숨겨 놓은 하얀 제 속살을 드러낸다. 연잎보다 조금 더 위로 목을 내민 연꽃 봉오리들은 얼굴 붉어진 새색시 볼 같다.

만개를 앞두고 잔뜩 웅크리고 있는 봉오리들은 언제까지라도 지금 이대로 있고 싶다는 듯 더없이 행복한 신부의 모습이다. 바로 청도 8경중의 하나가 아닌가. 그것을 지켜보는 가슴위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가을이 느껴진다.

유등연지 초입 군자정 주변에는 차량이 꼬리를 물고 늘어서 있다. 지나치다 차를 세우곤 우연찮게 들렀다 감탄을 하는 경우도 제법 많다고 한다. 인근 온천을 다녀 올때면 꼭 한번씩 찾는다는 박재오(42.대구 남구 대명10동)씨는 "온천욕 시간이 긴 아내를 아이들과 함께 기다리기엔 이곳이 제격"이라며 "연꽃이 진 자리에 매달린 연밥을 헤아리다 보면 문득 어릴때 연밥을 따던 생각이 난다"고 웃는다. 군자정 안에는 빈자리가 없다. 가족끼리 오순도순 얘기꽃이 한창이다. 번잡한 세상사도 이곳에선 낄 자리가 없어 보인다. 연꽃 사진을 찍기위해 카메라를 들고 서성이는 사람들도 여럿 보인다.

유등연지는 다른 저수지와 달리 방죽도 널찍하다. 군데군데 차량 2대가 교행할 수 있을 정도로 다듬어 놨다. 낚싯꾼들과 가벼운 얘기도 나눌 수 있다. 방죽위를 걷는 연인들의 걸음걸이는 슬로비디오 화면 같다. 연꽃을 한참 주시하다 간간이 활짝 웃는다. 방죽 중간쯤 어딘가에 휴식을 위한 의자 하나쯤이 아쉽다. 500m쯤 걸어 들어가면 연꽃과 어울릴 법한 2층짜리 레스토랑 '연꽃있는 풍경'이 나온다. 전면 유리 사이로 내려다보는 연꽃풍경, 방죽에 서서 볼때와는 또 다른 감흥이 인다. 비라도 오면 운치가 더욱 살아 날 듯 하다.

▨ 경산 감못.반월지.삼천지

경산시 갑제동 부지도 연꽃세상이다. 경산조폐창 바로 옆이다. 감나무가 우거진 언덕아래 있기 때문인지 동네사람들은 감못이라 부른다. 4만4천여평의 저수지가 수심 한가운데를 빠끔히 내놓곤 연꽃들이 자리다툼을 벌인다. 영남대학교를 지나 한라아파트에서 우회전, 가일리 방향으로 따라 가면 장관이 펼쳐진다. 스티로폼으로 만든 배를 타고 저수지 중간에서 낚시를 하는 강태공이 여유롭게 보인다. 차창밖으로 철이른 코스모스가 어서 오라며 반겨준다.

반월지(침범지)는 경산IC쪽으로 달리다 오목천 압량교를 지나 신촌.의송.가야리마을 표지판을 보고 우회전, 의송리 마을쪽으로 달리면 된다. 황제가구 공장에서 차는 세워두고 농로를 따라 500m쯤 걸어 들어가는 게 좋다. 일대 전체는 포도밭. 포도 익어가는 향긋한 단내가 진동한다. 4만4천여평의 저수지는 가슴을 시원하게 쓸어 내린다. 돌아나오다 인심좋은 과수원 주인에게 포도를 살 수 없냐고 물으면 덤으로 얹어주는 기쁨도 맛볼 수 있다.

영남대학교 삼천지도 연꽃으로 사랑받고 있는 곳. 공대 옆에 있어 학생들은 공대못으로 부른다. 규모는 3천여평으로 비교적 작은 편이다.

노진규기자 jgroh@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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