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영화-메멘토

가족과 친지들을 끌어 모아 찍은 16mm 흑백영화 한편이 있다. 그의 두번째 시나리오는 너무 똑똑하다는 이유로 수많은 영화사로부터 퇴짜맞았다.

웬걸, 올 3월 미국에서 단 11개 극장에서 개봉했다 10주 후 스크린 수를 500여개로 늘리며 전미 박스 오피스 8위까지 오르는 괴력을 보인다.

서른살의 크리스토프 놀란 감독. 그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이 영화로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감독중 하나가 됐다.

◈시간순서 거꾸로

'메멘토'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간 순서가 거꾸로 돼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과 닮아 있다.

즉 영화의 맨 처음 장면은 이 이야기의 결말에 해당되며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시간상 시작 부분에 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화면에서 주인공이 만나는 사람, 주인공의 대사, 주인공이 당하는 사건을 보고 들으며 생기는 '왜?', '어떻게 된거지?'라는 질문은 곧이어 등장하는 조금전 상황에서 하나씩 풀리기 시작한다. 결국 영화가 끝날 때쯤 지금까지의 모든 호기심이 풀려있음을 알게 된다. 이 영화를 제대로 보고자 하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최소 10분 정도는 유지돼야 할 기억력. '박하사탕'이 주인공의 전체 인생에서 몇몇 특정시기만을 떼어서 보여준다면, '메멘토'는 하나로 연결된 특정기간을 반대로 보여준다는 점이 다르다.

◈퍼즐게임 푸는 느낌

전직 보험 수사관이었던 레너드 셸비(가이 피어스)는 뭣이든 10분이상 기억못하는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자신의 이름과 아내가 강간당한 뒤 살해됐다는 것. 그리고 범인의 이름이 존 G라는 정도다. 물론 이 기억도 메모를 통한 것이다. 범인을 추적하다 중요한 단서조차 잊어버리기 때문에 레너드는 메모에 집착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메모의 기억마저 헷갈리면서 사건은 복잡해 진다.

결국 한정된 기억력을 가진 주인공과 관객의 심리상태를 비슷한 상황에 놓기 위해 영화의 시간을 거꾸로 전개하는 방식을 택했고 그 과정을 알아가다보면 퍼즐게임을 즐기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그래서 두·세번은 봐야 가닥이 잡힌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 2001년 선댄스영화제 각본상 수상. 25일 개봉.

배홍락기자 bhr222@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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