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일본은 있다

"4년 후에는 반드시 복수하겠다" 일본의 내년도 중학교 역사교과서 채택에서 당초의 공언과 달리 참패를 면치 못하자 우익단체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16일 기자회견을 가진 자리에서 이 모임의 다카모리 아키노리 사무국장이 한 말이다. 이 모임은 이번 역사교과서 채택 결과가 외국의 압력과 시민 단체들의 활동으로 왜곡된 측면이 있다며 문부과학성과 집권 자민당에 대해 교과서 채택과정에 대한 실태조사와 재심의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또 2005년부터 사용되는 초등학교 사회교과서에 대해서도 검정에 참여하겠다고 결의를 다져 그들의 집요함에 전율을 느끼게 한다.

▲이것은 일본내 우익세력과 양심세력의 '제2라운드' '제3라운드'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앞으로 일본내부의 분위기에 따라선 '반전'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긴장을 늦춰서는 안되는 어려운 싸움임을 나타내준다. 무엇보다 일본정부가 왜곡교과서 검정을 통과시키는 등 지지 내지 동조했다는 점과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에 대한 무시할 수 없는 지지세력 등 일본 지도층의 우익성향이 엄존한다고 볼 때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이번 교과서 채택과정에서 '풀뿌리 일본인'들이 보여준 태도는 앞으로의 한.일 관계나 일본의 미래지향적인 방향과 관련해 너무나 희망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94년 전여옥이 '일본은 없다'라는 책을 써 우리나라에 과연 일본은 무엇인가라는 '일본논쟁'을 촉발시키고 이어 서현섭이 '일본은 있다'라는 책을 내는 등 일본의 정체성에 관한 무수한 저술이 나왔었다. 그렇지만 일본의 양심과 관련해 볼 때 분명히 '일본은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일본 우익의 대표주자임을 자임하는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의 인기가 하늘을 치솟고 있음에도 도쿄도내 1개의 공립학교에도 우익교과서가 채택되지 않았음은 일본의 양식에 대한 신뢰감을 갖기에 충분하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가 도쿄도의 특수학교에서 우익교과서 채택을 결정하자 역사의 진실을 거스르는 행위라며 분노한 것은 일본 지식인의 '양식'을 대변해 준다.

▲이번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 채택에서 왜곡파문을 일으킨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측의 교과서는 최종적으로 12개 학교에서만 채택됐다. 일반 공립 및 국립 중학교에서는 한 곳도 채택하지 않았고 도립 양호학교등 특수학교 6개와 사립학교 6개에서만 채택됐다. 이는 일본 중학교 1만2천209개 가운데 0.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학생수로 따지더라도 내년에 새 역사교과서로 배울 신입생 140만여명 중 5천여명으로 전체의 0.4%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우리 정부와 뜻있는 시민들은 이번 결과에 자만하지 말고 일본내 건전한 양심세력을 돕는 한편 외교적 노력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일본의 양식있는 학부모, 학자, 교사, 시민 등 이성적인 '풀뿌리 일본인'맏음이 간다.

신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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