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멕시코 고대문명을 찾아서-(16) 인디오들의 오늘

그는 얼굴이 검고 곱슬머리이며 눈이 크다. 체격도 멕시코 사람 중에는 꽤 큰 편에 속한다. 서로 말이 잘 통하지 않은 이유도 있겠지만 이 헤수스는 약 보름간 우리 일행들을 원하는 곳은 어디든 밀림 속 구석구석까지 말없이 실어다 준 믿음직스러운 버스기사이다.

헤수스의 버스 양쪽 옆면에는 독수리의 머리 부분이 세련되게 디자인되어 있어 더욱 날래 보인다. 그러고 보니 멕시코시의 대통령궁 앞 소깔로에 게양되어있는 커다란 멕시코 국기에도 뱀을 차고 나는 독수리의 모습이 그려져 있을 뿐 아니라 도처에서 이러한 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처럼 멕시코 사람들이 독수리를 상징으로 삼게 된 것은 오늘날 멕시코라는 이름의 기원이 된 건국신화에서 비롯된다고 하겠다. 그들의 신 우이찌로뽀르뜰리가 날아가는 독수리를 가리키며 "저 독수리가 뱀을 물고 선인장 위에 앉는 곳에 정착하면 세계에서 이름난 도시를 건설할 것이다." 라는 말을 듣고 지금의멕시코시 대광장에 이르러 멕시코를 세웠다는 것이다. 독수리를 그들의 심볼로 하고 재규어를 유달리 숭배하며 인류사에 보기 드문 석조 문명을 남긴 멕시코의원주민 인디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의문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여러 학설 중 북방인류 유입설과 남방인류 유입설이 가장 두드러졌다. 최근에 들어서는 빙하기 베링 해협을통하여 몽고리안 계통이 대거 이주하여 왔다는 북방인류 유입설이 정설로 굳어졌다.

지금 멕시코 인구 중에는 인디오 계통이 약 25% 백인계가 약 15%, 인디오와 백인의 혼혈인 매스티조가 약 60% 정도 된다고 한다.그러므로 백인이나 극소수의 흑인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멕시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게 보인다. 또한 우리처럼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검으며 얼굴은 좁은 편이지만 광대뼈가 드러나는 등 이방인 같지 않고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인상들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프로야구나 축구에 대한 관심처럼 1970, 80년대에는 프로복싱과 축구가 역시 가장 인기 있는 운동종목이었다. 특히 프로복싱은 홍수환, 박찬희, 장정구 같은 그야말로 기라성 같은 세계 챔피언들이 등장하면서 그에 대한 열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은 경량급이었으며 그 상대자또한 칸토, 사모라, 곤살레스 등 복싱펜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작달막한 체구의 멕시코 선수들이었다. 타이틀을 놓고 펄펄뛰며 명승부전을 펼치던 작은 거인들. 그들은 서로가 왜 그렇게 자주 만났을까?

일찍이 그들은 신전마다 구기장을 마련하여 목숨을 걸고 고무공을 다루었다. 오늘 역시 조그만 공간만 있으면 공을 차는 젊은 인디오의 후예들.그들에게 한국은 멕시코를 주름잡던 축구의 나라. 월드컵을 개최하는 나라로만 알려져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몬떼알반에서 내려와 인디오들의 시장이 열린다는 사찔라라는 원주민 마을에 갔다. 시장은 큰 길을 따라 늘어선 현대식 건물에 몇 개의 가게가 있고 길거리도자동차가 거의 없으므로 비닐이나 천막을 깔고 열대과일, 플라스틱 그릇, 손으로 짠 옷감 등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니 천막들이 줄지어 쳐져 있고 다니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양갈래로 머리카락을 땋은 할머니들이 우리 시골 장터에서처럼 몇몇 종류의 과일과 곡식 주머니들을 널어놓고 우리를 신기한 듯 본다. 양쪽 볼을 몹시 진하게 화장한 젊은 여인이 옥수수빵을 구우면서 일행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나는 그 여인의 손놀림을 보다가 바로 옆의 조그만 나무 선반 위에 널려있는 낯익은 물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어릴 때 시골에서 여러 번 만들고 놀았던 Y자 모양의 나무 가지에 두 가닥의 고무줄을 묶어 만든 새총이었다. 정작 그 총으로 한 마리의 새도 잡아본 기억은없다. 그러나 지금도 비슷한 모양의 나무 가지만 보면 먼저 멋진 총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떠오르곤 한다. 주인이 부르는대로 20페소를 건네고 근사한 것 하나를 골라 흔들면서 시장을 나왔다. 조그만 인디오 사내아이가 따라오면서 손에 든 총과 나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자꾸 웃는다. 자기들의 장난감을 이방인이들고 다니는 것이 그렇게 신기한 모양이다. 빡빡깎은 머리, 땀자국이 남은 얼굴, 까만 눈동자, 그는 내 어릴 적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다.멕시코에서 가장 멀고 원주민이 살고있는 치아빠스주의 차물라 마을을 가보기로 했다. 이 곳 원주민들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배타적이고 그들의 전통을 고집하고 있어 대할 때 약간의 어려움이 따른다고 한다. 안내하는 대구가톨릭대 김우중 교수는 아예 사진기를 갖고 가지 말라고 할만큼 그들에 대한 세심한주의를 미리 알려준다. 생각보다 꽤 넓은 분지에 형성된 시장에는 화려한 원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17세 원주민 소녀 테레사가 앞장서서 안내를 맡았다. 우리가 들어선 넓은 시장 마당에는 열대과일, 물고기, 옷감 등 많은 종류의 물건들이 널려있었다. 닭을 몇 마리 묶어놓고 있는 할머니는 맨발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신발을 신지 않은 사람들도 꽤 보였다. 남자들은 대부분 염소 가죽으로 만든 것 같은 검은색과 흰색, 두 종류의 반코트를 입고 있는데 꼭 제복같이 보인다. 한 곳에 이들이 무리 지어 있어 들여다보니 서양의 정장한 남자들의 그림들을 걸어놓고 그 모양대로 이발을 하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시장의 동편에는 커다란 교회가 서 있었다. 그 앞에는 우리의 솟대처럼 커다란 소나무 가지가 세워져 있었으며, 그 밑에는 10여 명의 남자들이흡사 조선시대 포졸과 같은 복장을 하고 앉아 있다. 우리가 혹시 사진을 찍을까 제지하는 것을 보니 아마도 지역의 감시원들인 것 같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 보니 매캐한 냄새와 자욱한 연기 속에 많은 사람들이 바닥과 구석구석에 촛불을 밝히고 끼리끼리 열심히 기도를 하고 있었다. 베드로 등 여러 성인상들이 둘러있는 제단 옆에 젊은 부부가 그들의 아기를 안고 샤만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다. 교회의 바닥에는 소나무 잎을 깔아놓았는데마당 가운데 세워 놓은 소나무 가지를 보면 그들의 기원과 깊은 관련성이 있는 것 같다. 아즈테까, 마야 등 수수께끼의 문명을 남긴 멕시코의 원주민들은 16세기 초 34세의 백인 코르테스가 이끈 11척의 배에 16필의 말과 대포 등, 약간의 화기로 무장한 500여 명의 군인들에게 항복하였다.

천 여년 동안 이어져 왔던 찬란한 그들의 문명과 전통은 정복자들로 말미암아 밀림 속에서 폐허로 변해갔으며 그들의 흔적은 아직도 우리들에게감탄과 많은 수수께끼를 남겨주고 있다.

오늘날 일천만 인디오 후예들은 다시 그 땅의 진정한 주인이 되고자 그들의 젊은 지도자 마르코스를 앞세우고 지난 3월 민족해방운동의 대장정에고삐를 당겼다.

글:이형우(영남대교수)

사진:최종만(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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