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문표기 없는 대구 외국인들 장님

'눈앞으로 다가온 월드컵'에도 불구하고 대구의 관문인 공항·역·터미널과 각 관광지의 음식점은 여전히 '한글전용 메뉴'이고 외국인진료 지정병원의 영문표기 안내판은 찾아볼 수가 없다.

20일 오전 11시 30분쯤 대구공항 1층 스낵바. 사업차 대구에 왔다는 앤디 크리스(33·미국 시카고 거주)씨가 스낵바 메뉴판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메뉴판에 있는 영문이라곤 coffee가 전부. 앤디씨는 "샌드위치나 토스트로 간단히 요기를 해결하려 했지만 종업원과 말이 통하지 않는데다 메뉴판은 읽을 수가 없었다"며 "세계 여러 곳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답답한 도시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대구공항·대구역·동대구역에 문을 열고 있는 스낵바 4곳의 메뉴판 기재 음식 73개 가운데 영문표기는 단 7개. 특히 동대구역과 대구역의 스낵바 메뉴판은 영문 표기가 하나도 없다. 샌드위치, 토스트, 햄버거, 팝콘, 아이스크림, 콜라 등 기본적인 메뉴조차 한글로만 표기해놓아 외국 여행객은 메뉴판앞에서 '꿀먹은 벙어리' 처지다.

딸과 함께 대구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온 마이크 하인즈(48·캐나다 온타리오주 밴쿠버)씨는 "스낵바인지도 알아보기 힘든 지경"이라고 꼬집었다.

대구시가 외국인진료기관으로 지정한 모 종합병원 접수창구의 경우, 진단서 발급·원외처방전·원내약·입원수속 등 9개 간판에 영문표기는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외국인 도우미가 있는 '안내'창구도 한글 표기다.

외국인진료안내센터를 마련해 자문 외국인을 상주시키고 있는 한 병원은 병원 입구부터 안내센터까지의 안내판 중 영문표기 표지는 주차장의 나가는 곳(way out), 들어오는 곳(way in) 단 2곳이 전부다. 병원을 찾는 외국인은 진료안내센터까지 가기 위해 헤맬 수밖에 없다.

대구시 관계자는 "스낵바와 병원 메뉴판 및 안내판 영문표기엔 강제조항이 없어 업체 자율에 맡길 수밖에 없다"며 "다가오는 국제대회에 대비해서라도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공공장소 안내판에 영문표기 규정을 의무화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사회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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