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콘벤트리의 동상

기록적인 열대야가 언제였더냐는듯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선선해졌다. 기세등등하던 태양은 서서히 그 열기를 거두고 언제까지나 푸를 것 같던 나뭇잎들도조금씩 겸손해지고 있다. 대지에 뿌리박은 식물들마다 한 해의 씨앗과 열매들을 살찌우느라 분주한 모습들이다.

시간의 바퀴는 풍요의 계절 가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한데, 우리네 심사는 거둘 곡식 없는 빈 들판에 서있는 농부처럼 허허롭기만 하다. 일터를 잃은 가장들은 여전히 출구를 찾지 못하고, 젊은이들은 대학졸업과 동시에 실업자가 되고, 어린 누이들은 깔깔거리며 자신의 미래를 헐값에 팔아넘기고, 정치판은 허구한 날 싸움박질이고, 게다가 이젠 평양민족통일대축전 참가 사건을 계기로 남남(南南)갈등의 골마저 깊어지고 있다.

천신만고끝에 국제통화기금(IMF) 빚을 갚게되자 이번엔 미국 연방항공청(FAA)이 우리나라의 항공안전 등급을 2등급으로 하향조정, IMF 이후 최대의 국가적 창피를 당하게 됐다.이런 판에 이웃나라 중국은 요즘 매사가 순풍에 돛단 듯하여 부러운 시선을 감출길 없다. 개혁.개방 20여년만에 어느새 거인으로 커버린 중국. 물론인권문제나 티베트 탄압 등 문제점도 많지만 연간 7%가 넘는 고속 경제성장이 계속되는 중국에 대해 미국의 세계적 중국통 데이비드 램튼 존스 홉킨스대교수는 2020년이면 경제규모에서 미국을 추월하고 군사력은 두배로 늘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저가품의 홍수는 인해전술을 연상시킬만큼 위협적이다. 최근 세계무역기구(WTO)는 오는 11월 중국의 WTO 가입을 앞두고 중국의 무차별적인수출공세에 따른 수입국 보호를 위해 대중(對中) 특별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 조치 규정을 마련했다. 세계가 중국에 대해 바짝 경계의 끈을 조이고 있다.

또한 2008년 베이징(北京) 올림픽 유치로 중국인들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듯하며, 역대 최고의 올림픽을 기치로 베이징은 대대적인 성형수술에들어갔다.

그런가하면 70, 80대 노인들이 나라를 이끌었던 늙은 중국이 새파란(?) 50대의 후진타오(胡錦濤.59)에게 2002년부터 국가주석 겸 당총서기를 맡기는 등, 중국을 이끄는 7인의 정치국 상무위원 중 장쩌민(江澤民.75).주룽지(朱鎔基.74) 등 5명이나 물갈이될 것이라고 한다. 장쩌민의 경우 중앙군사위 주석직은 유지할 것으로 보이나 어쨌든 거대 중국의 입지를 다져놓은 장쩌민과 경제발전의 선봉장 주룽지가 권력 핵심에서 한 발물러선다는 그 자체가 노욕(老欲)이 기승하는 우리사회와 는 달라서 신선해 보인다.

종이호랑이의 열등감을 떨치고 거대한 블랙홀처럼 주변국들의 경제를 마구 빨아들이는 중국과 군국주의의 미망 속에 럭비공처럼 어디로튈지 모르는 '이상한 총리'에 열광하는 '이상한 나라' 일본. 이 두 자이언트가 기침이라도 하면 우리나라는 독감에 걸릴 정도가 됐다. 우리에게 과연 비상구는 있을까.

영국 중부의 코벤트리에는 한 여인의 동상이 있다. 11세기 무렵, 백성들이 무거운 세금에 고통받는 것을 본 영주의 부인이 남편에게 세금 감면을 탄원했다. 그러자 영주는 "당신이 알몸으로 마을을 한 바퀴 돈다면 그렇게 하겠소"라고 일축했다. 영주는 아내가 절대 그렇게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부인은 긴 머리를 풀어내린채 알몸으로 말등에 올라타고 마을을 돌았다. 이 소식을 들은 백성들은 모두 집에 들어가 커튼을 내렸다. 자신의 체면이나 위신보다 백성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치른 그 여인의 희생을 기린 동상은 지금도 사람들을 숙연하게 하고 있다.

입으로는 국민의 이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자신과 가문의 영달을 꾀하는 우리사회의 지도층이 되새겨 봐야할 교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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