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세월도 멈춘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육지속의 섬 무섬마을. 고즈넉이 수백년의 세월을 지켜온 고택들은 지난 97년 전통민속마을로 지정을 추진했으나 문화재위원회에서 훼손이 심하다는 이유로 반려됐다.
대신 원형을 최대한 보존한다는 차원에서 99년 경북북부지역 양반가의 전형적인 가옥 구조인 ㅁ자형 가옥과 서민들의 가옥구조인 까치구멍집 등 모두7채의 개별 가옥을 경상북도 민속자료와 문화재자료로 지정됐다.세월의 흐름속에 이 마을 출신의 많은 사람들이 도회지로 떠나 이제 노인들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사람들이 살지 않는 많은 전통가옥들은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는 듯 하나둘씩 허물어지고 있어 보존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불의에 항거하는 올곧은 선비정신은 이 마을을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성지로 남게 했다. 천석꾼이 10명이 넘었던 이 마을 사람들은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지원하고 일본에 유학한 김화진 등을 통해 일제의 실체에 일찍 눈뜬 선각자들을 중심으로 반일 애국계몽운동과 독립운동의 중심이 될 수 있었다.
지난 1928년 10월 개숙된 아도서숙은 1933년 폐숙될 때까지 문맹퇴치 민족교육 민족정신고양 등의 사업을 펼쳐 농촌부흥과 민족교육을 통한 자주독립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무섬출신인 김화진 김종진 김성규(조지훈의 장인), 김종규 김계진 박찬하 등의 아도서숙 운영위원들은 대부분 신간회 영주지부와 영주청년동맹의 위원들로 활동한인물들. 이같은 인물들의 영향으로 무섬마을은 일제말까지 세금을 잘 내지 않는 마을, 부역을 하러 나오지 않는 마을로 반일 명성을 널리 떨치기도 했다.
해우당 김락풍의 손자인 김천규는 일제시대 일본에 건너가 일본영화인 일활(닛까스)영화사에서 활동하다 귀국후 아리랑의 나운규와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 김천규의 딸인 김삼화는 영화배우로 1970년대 '양강도'에 주연으로 활동하기도 했다.무섬은 영양 주실마을 출신 동탁 조지훈(1920-1968)의 처가로도 유명하다. 동탁은 혜화전문학교 시절인 19세때 고종사촌인 김용진(작고)씨의 소개로 무섬마을 출신인 김성규(독립운동가)의 딸 난희씨와 결혼했다. 동탁은 결혼할 당시 함이 무섬마을에 도착했을 때 산자수려한 풍경과 무섬에 내려와 처가 친척들과강변에서 즐겼던 개매기(겨맥이:고기잡이 일종)의 추억 등이 그의 시 곳곳에 베어있다.
김위진(81)옹은 "조지훈과 종종 어울려 달밤에 강바닥에 발을 꽂고 미끼를 던져 물고기를 잡아 소주잔을 나누었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아마 동탁도무섬에서 지냈던 기억들이 그의 시 작품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 마을에는 즐비한 고택들과 함께 내림 음식도 그 맥을 잇고 있다. 신선한 소 앞다리살을 다진후 꿀과 고추장 참기름 간장 생강 고춧가루 등의 갖은 양념을 넣어 볶아 만든 육잠. 찹쌀로 만든 식혜의 일종인 점주도 양반가 아낙들의 정성으로 몇대째 그 맛을 이어 오고 있다.
아직도 많은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무섬마을은 마을 자료관 건립 등을 통해 생활문화 체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채비를 하고 있다.
영주.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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