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화두, 디지털. 그 도도한 흐름에 아직도 영화계 전반의 기류는 태무심하다. '필름지상주의'가 여전히 충무로를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로 무장한 신세대들의 도전또한 만만찮다. '접속'의 장윤영, '친구'의 곽경택, '공동경비구역 JSA'의 박찬욱, '해피엔드'의 정지우씨 등의 젊은 감독들은 디지털카메라로 '나홀로 작업'을 오랫동안 거쳐 '제도권'인 충무로에 입성한 케이스다.
영화 불모지인 지역에서도 자기만의 영상세계를 고집해서건, 충무로를 겨냥해서건 그같은 흐름이 하나의 실선으로 자리를 조금씩 잡아가고 있다.
디지털 영화시대가 대세가 아님은 대다수 사람들이 디지털 영화에 대한 정의조차 선뜻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서도 엿보인다. 디지털 영화란 말이 영화가에서 쉽게 운위되고 있음에도 정작 "디지털 영화가 뭐냐"는 질문에 답을 선뜻 내놓는 이는 드물다.
디지털 영화를 두고 아주 빡빡한 정의를 내린다면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컴퓨터로 편집과정을 거쳐 디지털 영사기(데크)를 통해 투영된 영상을 일반 관객들이 즐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정의라면 디지털 영화는 아직껏 구현된 바 없다. 디지털 영사기까지 구비해 관객을 받는 영화관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다만 지난번 HD 디지털카메라로 촬영된 조니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 에피소드'가 일본 소니사로부터 빌린 HD방식 수용 영사기로 국내 한 영화관에서 상영된 적이 있었고 당시 색감이 탁월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한계로 현 단계에서의 디지털 영화는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편집해 이를 비디오에 담거나, 화일화해 인터넷으로 구동한 것 등을 일컫을 수 밖에 없다는다는 것이관계자들의 일반적 견해다.
이 과정에서 대중성과 작품성 등이 현실에 눈밝은 제작자 눈에 들게 되면 일반 영화관 상영을 위해 많은 자본이 투자돼야 하는 필름으로 재생된다.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장선우 감독의 '나쁜영화', '거짓말' 등이 이런 부류다. 이렇게 필름으로 재생된 영화도 디지털 영화에 포함된다. 편집이후 후반작업을 컴퓨터 등 디지털 첨단기기로 마무리짓는 애니메이션도 물론 같은 범주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외의 부분에선 아직 필름 영화가 대중을 이룬다. 충무로 등 거대자본을 움직일만한 상업영화계에선 디지털을 여전히 상업적 가치를 지닌 유효한 수단으로 보지 않고 있다. 필름이 비디오보다 아직까지 화질 등에서 대단히 우수하며 아주 많은 노하우가 필요한 영상의 결정체란 신념을 갖고 있다. 게다가 온전히 필름 이상의 색감으로 디지털 영화를 구현하기 위해선 2억원 가량하는 고품질 디지털 카메라와수억원하는 디지털 영사기 등 첨단 기기 인프라 구축에 많은 비용이 소요돼야만 한다.
그럼에도 디지털 영화는 상업영화쪽에서 보기엔 어설프나마 영화제작에 관심있는 아마추어들이 큰 돈 들이지 않고 영화를 만들어 돌려 볼 수 있고 이를 통해 충무로에다 자신의 재능을 내 보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특히 젊은 매니아들로부터 각광받고 있다.
"DV(Digtal Vedio)는 평등한 매체임에 틀림없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돈이다. 돈이 없어서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세상이라면 그 만큼 비인간적이고 계층적인 구조가 있을까. 마치 유치원에서 어떤 아이는 엄마가 사준 레고 블럭으로 집을 만들고 어떤 아이는 집이 가난해 빈속으로 손가락만 빨고 있다면 어찌 창조활동의 공평성이 보장될 수 있으랴"
대학생이면서 영화제작에 관심이 많아 DV로 찍은 수편의 '영화감독'이력을 지닌 김삼력씨가 자신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대구독립영화협회 홈페이지(difa.co.kr)에다 올린 글이다. 김씨는 "DV로는 일단 큰 비용들이지 않고 영화를 만들 수 있고 필름같이 이것저것 재고 많은 스텝을 동원하지 않아도 되는데다 필름으로는 꿈도 못꾸는 앵글들이 속출한다"며 예찬론을 펼친다.
자본과 창작으로부터의 자유를 모토로 지난해 설립된 대구독립영화협회엔 김씨와 같은 맹렬회원이 40여명에 이르고 이중 20여명이 디지털 영화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 사무국장인 남태우씨의 전언이다.
남씨는 "넓은 의미에서 보면 디지털 영화는 접근성에서 용이한 장점을 가지면서 영상의 민주성은 확보했다"며 "그러나 제대로된 디지털 영화를 구현하고자 한다면 제작비와 기술비 등 엄청난 자본이 든다"고 했다. 이런 까닭에 일단 활성화는 되고 있지만 질 자체가 높아지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아직은 국내에서 미미한 흐름을 타고 있는 디지털 영화가 그러나 하나의 큰 트렌드로 진행되고 있음을 부인하는 이는 거의 없다. 시간문제일 뿐이란 것이다.
모든 분야에서 그렇지만 특히 디지털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미국에서는 최근 '디지털 배우'까지 만들어 내면서 오프 라인 배우들을 경악케 하고 있는 단계로 까지 나아가고 있다. 영화 선진국과의 간극을 조금씩 좁혀가고 있는 우리 영화가 세계무대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영화관련 종사자들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것이 한결같은 지적이다.
배홍락기자 bhr222@imaeil.com
대구를 '디지털영상 도시'로 만들자고 목소리를 높인 이가 있었다. 신경정신과 원장인 권용철 KDF대표. 영화를 좋아해 95년부터 동성로에다 '영화 카페'를 만들어 동우회 활동을 시작했던 그는 국제영화제를 갖는 부산에 반해 대구는 디지털영상도시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대구시에 꾸준히 건의했었다.
"가전제품은 5년만 하면 거의 수명을 거두는데 필름은 너무 오래 살았다. 그런데 디지털은 아무도 손 안대고 있다. 이럴 때 우리가 하자. 헐리우드마냥 비와 바람이 적은 분지인데다 바닷가도 가깝고 전통 마을인 안동, 청송 등지와도 가까워 지역적 조건도 완벽하다 "
대구시에서 밀라노프로젝트를 내놓을 때 특히 톤을 높혀 "디지털 영상(엔터테인먼트)도시 계획을 더하면 영화와 CF 프로덕션사 등이 생겨나고 모텔과 배우 지망생들이 들끓으면서 여러가지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목멨다.
한 때는 될 듯도 싶었다. 시내 한 복판 건물에다 디지털 영상 센터를 만들어 관련 장비를 대구시가 마련해 디지털 영화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저렴하게 활용토록 하면 되겠느냐는 얘기까지 거론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무위였다.
그는 한편으론 공학도들의 도움을 받아 국내 최초로 소위 키네코(Tape to film transfer) 장비를 만들어 냈다.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 편집한 것을 일반 상영을 위해서는 디지털 영사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게 국내엔 없는 만큼 기존 영사기에 걸 수 있도록 필름화 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하는데 이를 가능케 하는 장비다.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등도 외국에서 들여 오려면 1억~1억5천만원의 비용이 드는 이 장비를 권 대표가 무상 이용토록 해 줌으로써 일반 상영이 가능했다.
그럼에도 우리 지역은 물론, 서울 등지도 별 반응이 없었다. 1년반 전쯤부터 국내는 '포기'했다. 캐나다에다 자신의 디지털영화 관련 노하우를 전했고 캐나다는 영주권까지 줄테니 오라고 환대했다. 이미 상당수 장비를 캐나다로 옮겼다. 생활 근거지까지 옮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다음달 3일 캐나다로 출국한다.
배홍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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