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날 많은 영웅들을 가지고 있었다. 정치가·사상가·종교인·과학자·혁명가가 있고, 전쟁 영웅도 있었다. 그들은 뛰어난 능력으로 세상을 구제하거나 남다른 자질로 인류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한 인물들이었다. 일반인들의 가슴을 적시고, 영혼을 맑게 해주는 '등대'와 같은 인물들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카리스마에 열광했으며, 구세주나 예언자처럼 역사적 고난과 역경을 타파해주기를 바랐다. 쉽게 모방하거나 범접할 수 있는 인물들도 아니었다.
▲그러나 디지털 혁명의 와중에 있는 이 시대에는 그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그 개념이 많이 바뀌고 있을 뿐 아니라 '영웅이 사라진 시대'라고 일컬어 지기까지 한다. 과거와는 달리 공인의 이야기가 낱낱이 들춰지기 때문에 한때 영웅으로 추앙받던 인물이라도 얼마 못가 그 명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워 지게 마련이다. 매스컴들이 '영웅'이라는 말을 남발한 탓도 없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의 US뉴스 앤드 월드리포트가 최신호의 설문조사를 통해 '20명의 숨어 있는 진정한 영웅들' 이야기를 실어 화제다. 이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4명 중 1명은 '한때 영웅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이 더 이상 나의 영웅이 아니다'며, '그들은 지나치게 자신의 영예에만 관심을 갖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영웅으로 한때 추앙받던 인물이라도 곧 어두운 구석까지 시시콜콜 들춰지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얘기다.
▲US뉴스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이 꼽은 10대 영웅은 예수, 마틴 루터 킹, 콜린 파월, 존 F 케네디, 테레사 수녀, 로널드 레이건, 에이브러햄 링컨, 존 웨인, 마이클 조던, 빌 클린턴 순이다. 과거와는 크게 달라졌지만 예수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최상위로 기록된 사실은 흥미롭다. 미국의 국무장관, 전 대통령(2명), 은퇴한 농구선수 등 현존 인물이 포함돼 있고, 케네디 전 대통령과 테레사 수녀가 상위권을 차지한 점도 마찬가지다.
▲인간 심리와 사회의 상호작용을 탐구한 독일 출신의 사회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저서 '소유냐 삶이냐'를 통해 사람들이 영웅을 찬양하는 이유를 '누구나 할 수만 있다면 그들처럼 살고 싶다고 마음속 깊이 느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영웅의 몰락을 보는 필부의 마음은 자신의 꿈의 일부를 잃어버리기라도 한듯 착잡해 지게 마련이다. 영웅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활기차고 건전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일그러지지 않은 영웅'은 과연 얼마나 될는지….
이태수 논설위원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