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이 친구가 되는 데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조금 전 거리에서 내 어깨를 무례하게 밀치며 멀어진 한 무리의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서로 친해진 사람들일까. 친구 만들기는 대체로 일정한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다. 학교, 직장, 마을…. 친구가 된 사람들은 함께 거리를 활보하고 깔깔 웃는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언젠가 이별은 찾아온다. 머무는 공간이 달라지는 순간 사람들은 서로를 쉽게 잊는다. '다시 만나자'는 다감한 인사와 함께 악수를 나누지만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또 다른 공간엔 또 다른 사람이 있고 일상은 좀처럼 귀향을 허락하지 않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수연(23·경남 거제시)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의 학교로 진학했다. 그러나 그녀는 좀처럼 낯선 얼굴들 사이로 파고들지 못했다. 사람들은 모두 제 영역을 정해놓은 들짐승처럼 굴었고 그녀는 쉽게 틈을 찾아내지 못했다. 학교에서 자취방으로, 자취방에서 학교로, 입학 후 한참 동안 이수연씨의 동선은 간단했다.
혼자였던 그녀가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친구 만들기의 수단은 춤. '나이트 클럽에서라면 난…'이란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었고 나이트 클럽을 기웃거리기를 며칠. 놀랍게도 그녀에게도 친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은 친한 친구 40여명에 대충 얼굴만 아는 친구까지 합치면 아마 100명은 될 정도라고.
그렇게 사귄 친구들은 일정한 공간에서 사귄 사람과 사뭇 다르다. 미용실 직원, 치과 조무사, 대학 강사, 스쿼시 코치, 대학생, 수능시험 준비생까지. 나이도 천차만별이다. 19세에서 32세까지의 남녀가 거리낌없이 어울린다. 그들의 공통점은 춤을 좋아해 밤새워 춤춘다는 것뿐이다.
'나이트 클럽…'의 친구들은 애당초 생활동선이 달랐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우정에 물리적 공간이나 생활동선은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대학 졸업 후 거제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는 이수연씨는 여전히 대구의 벗들과 친하다.
이 모임 회원인 권선영(21·대구시 칠성동)씨와 권영옥(21·대구시 송현동)씨는 춤을 어울림이라고 말한다. 학교나 직장처럼 친구를 맺어 주는 또 다른 장치가 춤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졸업도 없고 퇴직도 없으니 언제까지고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단다.
이 곳 사람들은 전문 춤꾼이 아니다. 그저 음악에 맞춰 몸을 비틀거나 흔들어댈 뿐이다. 그러니 춤을 좋아하기만 하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든 친구로 맞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나이트 클럽에서라면 난…'의 사람들은 '괜히 친한 척'을 잘한다. 그런 분위기 탓에 처음 모임에 나온 사람들은 이들을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던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고 다음 만남에도 빠짐없이 나오게 된단다.
"나이트 클럽에 들락거리면 '날라리'들이 아닐까 생각하실텐데요, 그렇지 않아요" 권선영씨는 친구들 모두가 제 일상에 충실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소개했다. 모두 춤을 취미로 가졌을 뿐 학생은 학생답고, 직장인은 직장인답다고. 선영씨 자신도 웹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학원비를 모으는 중이라고 했다.
"학교 친구보다 좋은 점은 다양한 조언을 구할 수 있다는 거예요. 또래 친구들한테서 얻기 힘든 경험도 얻을 수 있고요. 아르바이트 자리쯤은 금세 구할 수 있죠" 통 말없이 자리만 지키던 권영옥씨는 여기서 만난 친구들이 세상을 배우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입을 뗐다.
대구는 물론 서울, 구미에서도 달려온 '나이트 클럽에서라면 난…'의 사람들은 주말에만 나이트 클럽을 찾는다. 다음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요일 아침이 훤하게 밝아올 때까지 벽돌처럼 우정을 쌓는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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