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선행을 숨기는 사람들

좋은 일을 하고도 꼭꼭 숨기려는 현상이 이제 일반화되고 있다. 까딱 잘못 알려지면 오히려 큰 고통을 당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

칠곡에서 기업을 하는 박모(46)씨는 최근 몇년 사이 역내 여러 학교의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많은 정성을 쏟아 왔고, 자연스레 주민들 사이에서 칭찬이 돌았다. 하지만 박씨는 한사코 소문의 확인을 거부했다. 다른 지역에서 사업할 때 선행이 한두차례 신문에 보도된 뒤 겪었던 곤욕 때문. 전국 곳곳의 온갖 단체들이 전화해 "우리도 도와 달라"거나 찾아 오기까지 해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으로 혼쭐이 났다고 했다.

칠곡군청 이웃돕기 창구 풍경도 마찬가지. 100만원 이상 선뜻 내놓는 인사들은 한사코 이름 알리기를 거부한다. 그래서 장부에 등재되는 그의 이름은 '익명의 독지가'. 이런 사정을 아는 만큼 군청 직원들도 선의의 피해를 막기 위해 반회보.소식지.홍보자료 등에서도 기증자의 이름을 감춰 주고 있다.

이런 상황은 선행 기증자가 아니고 단순 '성공자'로 소개되는 사람들에게까지로 확대되는 추세마저 나타나고 있다. 농민의 경우도 각고의 노력 끝에 특수 작물로 성공해 보도되면 즉각 힘든 일이 뒤따른다며 보도를 한사코 기피하는 경우가 적잖다.

왜관 정모(46)씨는 "성공담만 보도되면 각종 단체들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밤낮 가리지 않고 괴롭힌다"고 했다. 의성의 한 유명한 고추농사꾼도 최근 매일신문 보도 이후 전화로 몸살을 앓았다고 했다.

또 여유가 있어 남을 돕는 경우는 그렇다 치고, 극도의 어려움을 이겨가며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가난한 선행자'마저도 같은 공략에 시달리고 있다. 그 자신조차 영세민으로 지정돼 있으면서도 그런 일을 하는 모씨는 얼마 전 선행이 신문에 크게 보도되고 청와대에 초청돼 TV 화면으로 나가자 "도와주겠다는 사람이나 도움을 달라고 연락하는 사람이나 거의 숫자가 비슷했다" "심지어 교도소 수감자까지도 편지를 보내 와 물품을 사 보냈다"고 했다.

경북과학대 김찬곤 교수(경영정보)는 "사회의 귀감이 되는 선행은 많이 알려질수록 사회 전체를 불 밝히는 청량제 역할을 할 것인데도 부작용이 더 많으니 우리 사회가 귀한 이야기까지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칠곡.장영화기자 yhj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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