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해광칼럼-모친,모교,모국에 대하여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내게 있어서 모친이란 단어는 내 인생의 알파요 오메가이다. 어머니, 이 얼마나 정겨운 말인가. 내 삶이 비롯된 곳이 고향이라면 그곳엔 언제나 어머니가 계신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 시를 좋아한다. "어머니/그 숱한 말 가운데서/누가 처음 어머니를/어머니로 부르게 했을까/어머니/지구와 지구에서 가장 먼 별만큼/떨어져 있더라도/향기처럼 지울 수 없는/그림자처럼 가까이 계실/어머니"

누구의 시인지도 모른다. 빛바랜 어느 잡지에서 스크랩하여 내 서재의 어머니 흑백사진 곁에 붙여두고 있다.

모친, 모교, 모국 이 세 단어는 이전투구의 진부한 세상에서, 욕계화택(慾界火宅)의 이 풍진세월속에서 나를 푸른 초장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는 말들이다. 사뮤엘 존슨은 "애국심은 백수건달들의 마지막 도피수단"이라고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어머니 없이 그대 어디서 왔으며, 모교없이 그대 무엇을 배웠고, 모국없이 그대 어디를 떠돌것인가? 백수건달일수록 어머니가, 조국이, 모교가 더더욱 그리울 수 있지 않은가.

우리는 너무나 현실상황에 함몰되어 각박한 무한경쟁의 도가니속에서 살아남기에 혈안이 되다보니 냉정한 IQ(지능지수)만 있고 아득한 고향모교와 아늑한 모친의 품속을 그리워하는 EQ(감정지수)는 모두 버린 지 오래 아닌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늘날 "보다 덜" 차가운 이해타산적 이성의 세계에서 "보다 더" 따사로운 감성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형언할수 없는 허화의 와중에서 고요한 바다, 유장한 계곡, 묵묵한 심산에 누워 생존대열에서 정신없이 달려온 자아를 반추할 마음의 여유를 찾아야 하겠다. 잃어버린 추상의 날개를 다시 찾아야한다. 생존경쟁의 무한대열에서 녹녹한 감성의 파랑새존으로 다시 귀향할 수는 없는가.

그런데 지금 내 어머니 모국이 켜켜이 쌓인 인고의 세월속에서 형언키 어려운 고뇌의 무게로 압박당하고 있다. 내 조국 대한민국이 내우외환의 상처투성이로 울부짖고 계신다. 조국분단 51년째, 사상은 상극되고 민족은 별리(別離)의 슬픔속에서 신음과 오열을 터뜨리고 있다. 등짐져서 살아가는 제4세계 네팔민족도, 기근으로 피골이 상접한 소말리아도 물리적 아픔은 있을지인정 우리처럼 7천만 내 형제부모가 반세기를 넘도록 생이별의 울음은 울지않지 않는가? 이 세상 60억 199개 국가중 도대체 어느 나라가 내 모국만큼 이렇게 처절하게 분단의 아픔과 전쟁의 가혹한 시련을 경험한 나라가 있단 말인가. 세계조류와 시대정신은 통일과 평화인데 냉전종식 10년이 지났고 이데올로기 종언된 지 10여년이건만 왜 하필 이 땅 내 모국만 지구상 유일무이한 분단국으로 남아야 하는가. 운명의 장난인가 팔자소관인가?

세계최고의 사교클럽 'OECD'에 29번째로 가입했고 제3세계국가로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세계축제인 올림픽을 개최한 지 10년이 훨씬지났으며 세계경제대국 12위를 마크하고 GNP 1만달러를 기록했던 이 민족. 반도체.조선기술 등 세계최고 일류품목 55개를 소유한 이 나라가 아직까지 꿈에도 소원이 통일이란 노래를 애국가처럼 불러야하고 40년전의 인물들이 지금도 주류를 이루면서 국내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이 구태의연한 현실상황과 주변 4강의 눈치를 의식해야 하는 국제정치의 희생양 신세를 누구에게 호소하고 보상받아야 하는가.

세상만사는 마음먹기에 달렸다. 일체유심조(一切惟心造)이다. '내탓이오'운동을 확산해야 한다. 밤이 어두울수록 새벽이 가깝다.

필자가 70년대초 계명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자 그곳 초등학생이 나를 보고 중국인? 일본인? 하다가 월남인? 하든 그 시절을 기억한다. 참으로 암울했던 독재시대의 미미한 조국이었다. 이제 모국의 태극깃발은 육대주에 펄럭인다. 돌아갈 고향이 있고 내 심장을 바칠 조국에서 내가 마지막 기댈 수 있는 어머니의 가슴이 있는 자, 그가 참 행복한 자 아닌가. 어머니, 내 영겁의 그리움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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