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영제국 영광뒤 시계공 있었다

◈경도 데이바 소벨

망원경을 발명한 갈릴레오나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같은 대과학자들도 이루지 못한 일을 시골출신의 한 시계공이 해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존 해리슨(1693∼1776)은 영국 요크셔 지방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시계만 만들어왔지만, 바다에서 경도(經度)를 측정할 수 있는 시계(chronometer)를 개발, 해상왕국 대영제국의 영광을 이끈 숨은 천재였다.

과학저널리스트 데이바 소벨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천재의 얘기를 찾아내, 과학전시 큐레이터인 월리엄 앤드루스의 삽화를 덧붙여 '경도(Longitude.생각의 나무 펴냄)'를 내놓았다. 이 책은 '경도'측정법을 찾아내기 위한 경쟁에서 유명 과학자들을 물리치고, 인간승리를 이룬 한 시계공의 얘기지만, 그 당시 역사와 과학사를 함께 다루고 있어 흥미를 더해준다.

먼저 이 책을 읽기 위해선 지리학에 흔히 쓰이는 경도(經度)라는 용어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알고 싶으면 위도(緯度)와 경도를 파악하는 것은 기본. 적도를 중심으로 지구를 남북으로 나눈 위도는 북위 38도선 등으로,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중심으로 지구표면을 좌우로 나눈 경도는 동경 138도 등으로 표시된다.

그런데 불과 200년전만 해도 경도를 측정할 방법이 없었다. 경도를 모르고 바다에 나간다는 것은 지도없이 아프리카 밀림을 헤매는 것보다 훨씬 위험했다. 자신들의 배가 현재 어디 있는지를 모르고서는 암초를 피할 수도, 목표지를 찾아내기도 불가능했다. 위도의 경우 노련한 뱃사람이라면 낮의 길이, 태양의높낮이, 별 등을 보고 쉽게 알 수 있는 반면, 경도의 경우 회전하는 지구로 인해 좌우로 오락가락해 판별할 수단이 전무했다. 결국 1714년 영국의회는 방향을 잃은 선박의 사고가 갈수록 늘어나자, 2만파운드(현재의 수백만달러)의 상금을 내걸고 경도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나장치를 내놓는 사람에게 상을 주기로 했다. 그 후 달을 측정하는 방법, 목성의 위성을 관측하는 방법 등이 제안됐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존 해리슨은 바다에서도 정확하게 작동하는 해상시계를 만들 수밖에 없다고 보고, 40여년간 여기에 매달렸다. 시계로 기준지역이나 출발한 항구의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 지방시(현재 위치)의 시간을 정확히 알아 이를 대조하면 경도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문제는 그당시 기술로는 녹슬지 않고 진동에도 꿈쩍않는 정밀한 시계를 만들기가 불가능했다.

해리슨은 온갖 시련과 난관을 겪고 시계를 4차례나 개량(H1∼4), 드디어 1773년 79세의 나이로 그렇게 소원하던 '경도상'을 받게 된다. 무학의 시골뜨기가 불꽃같은 삶을 살며 아무도 이루지 못한 위대한 업적을 성취한 순간이었다. 저자는 "영국이 바다를 지배하게 된 것은 순전히 그의 시계 때문이라는 것은 과장된 얘기가 아니다"고 평가했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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