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침몰직전, 배안은 생지옥이었다"-우끼시마 마루호 생존자 증언

"기관실부근에서 '펑'소리가 나면서 배가 공중으로 떴다 가라앉기 시작했어요. 승객들이 한꺼번에 배 앞뒤와 망루에 몰려가 살려달라며 절규해 생지옥과 같았습니다"

지난 45년 8월 24일 해방직후 조선인 징병·징용자, 유학생 등을 태우고 귀국 도중 교토 마이즈루항 앞바다서 침몰, 수천명(일본측 주장 5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일본 해군 수송선 '우키시마마루호 폭침사건'의 생존자 마근갑(79.대구시 북구 태전동)씨.

켄사이 전문대를 다니다 강제징병을 피하기 위해 아오모리현 오오미나 해군기지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마씨는 그날의 아비규환이 어제일처럼 생생하다며 몸서리쳤다.

"일본군이 공짜로 부산까지 귀국시켜 준다고 방송을 해 수천여명의 조선인들이 가재도구까지 실어 배에 오르는 바람에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만선의 배는 사고 이틀전 해군기지를 출발, 부산으로 가던중 계획을 바꿔 마이즈루항에 중간기착하려다 항구 앞바다서 미군의 기뢰에 의해 폭침됐다는 게 일본측의 주장.

그러나 마씨는 '동승한 일본인이 고의로 폭파한 소지가 짙다'며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동해 앞바다에 기뢰가 많아 비교적 안전한 마이즈루항으로 우회했다는 일본측주장에 대해 '결정이 갑작스러웠고 기뢰설치 가능성을 몰랐을 리가 없다'고 말했다.

당시 부산에 도착하는 것에 대해 일본 승무원들 사이에 '아부나이(위험하다)' '고마따 데스네(곤란하다)' 등의 불안감이 감돌았다는 주장이다. 그는 또 마이즈루항 앞바다서 굳이 좁은 섬 사이를 통과해 입항을 시도했던 점, 마이즈루항에서 불과 10,20분 거리에 있는 사고현장에 구조선이 한시간이 넘어서 나타난 점도 '고의폭침의 증거'라고 덧붙였다.

이 사건과 관련, 생존자 15명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일본법원은 지난 23일 "강제징용자의 안전송환에 대한 국가책임을 게을리 한 점이 인정된다"며 "생존자 에게 300만엔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한국인 피해자들은 일본측의 우발적인 사고라는 점, 생존자에게만 배상을 인정한 점, 유족들이 요구한 공식사과를 거부한 점 등을 들어 불완전한 판결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마씨는 "사고 생존자과 유족들이 원하는 것은 금전적인 배상이 아니라 공개적인 사과와 함께 진상규명"이라며 "일본측의 뻔뻔한 변명을 바로잡는 것만이 억울하게 숨져간 원혼을 달래는 길" 이라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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