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출산율에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 60년대 이후 산아제한 정책을 폈던 정부가 저출산율에 따른 인구감소를 우려, 이제는 출산 및 보육수당 지급 등을 통해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방안을 추진할 정도가 됐다.
'결혼을 하면 반드시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갖지 않고 부부만의 생활을 즐기려는 맞벌이 부부를 지칭하는 이른바 '딩크(DINK:Double Income No Kids)족'이 늘고 있고 경제적 이유로 출산을 꺼리는 부부들도 많다.
▨ 아이 낳기 꺼린다
"아이요? 앞으로 형편이 되면 낳아야죠. 그러나 반드시 아이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결혼 5년째인 윤모(31·여·회사원·대구시 달서구 용산동)씨는 아직 아이가 없다. 시집은 물론 친정에서도 아이를 가져라고 채근하지만 윤씨는 그때마다 구렁이 담넘어가듯 '예, 노력할게요'라며 슬쩍 빠져나간다. 출산을 하면 지금 다니는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없고 젊었을 때 재산을 좀 모아볼 생각으로 피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5살난 딸을 둔 전업주부 이모(33·대구시 북구 산격동)씨는 "왜 둘째를 낳지 않느냐"는 주변 사람들의 불쑥 던지는 말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많다.
이씨는 "남편의 월급으로 딸아이 하나 키우는 일도 빠듯한데 어떻게 둘째를 생각할 수 있느냐"며 "아이가 더 크면 출산이 아니라 돈을 벌러 나가야 할 형편"이라고 우울해했다.
맞벌이를 하고 있는 김모(34·자영업·대구시 수성구 시지동)씨는 전형적인 딩크족. 부부의 수입이 한달 평균 700여만원에 이르지만 출산계획이 없다. 이들은 자녀양육에 뺏기는 시간과 비용을 모두 자신들을 위해 투자하기로 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 실태조사'에 따르면 결혼한 부부가 반드시 자녀를 가져야 하는지 여부에 대한 질문에서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이 지난 91년에는 90.3%였으나 2000년에는 58.1%로 급속히 떨어졌다.
▨우리 나라 출산율의 현주소
지난 70년대까지 한국의 경제발전을 가로막았던 가장 큰 장애는 높은 출산율(여성 1명이 가임 기간에 낳은 평균출생아수)에 따른 급격한 인구증가였다. 다행히 60년대초부터 실시한 가족계획사업의 영향으로 출산율은 60년 6.0명, 70년 4.5명, 80년 2.8명, 90년 1.6명으로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통계청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2000년도 출산율 1.47명은 인구증가 억제란 선을 넘어 인구감소란 또 다른 문제를 예고하고 있다. 2000년도 출산율은 다행히 99년도 1.42명보다 약간 늘어 8년만에 증가세를 보였다. 그러나 이는 새천년을 맞아 '즈믄둥이' 출산 유행이 빚어낸 일시적 현상으로 분석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1.35명), 독일(1.37명)보다는 출산율이 높지만 미국(2.13명), 영국(1.72명) 등 다른 선진국보다 낮아 저출산율 국가로 분류된다. 이런 추세로 가면 2020년쯤에는 인구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낮은 출산율은 노동력 공급 부족과 인구노령화 현상에 따른 각종 경제·사회적 문제를 낳게 된다.
▨대책은 없나
여성들에게 국가 장래를 위해 아이를 더 낳아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정부가 고무줄처럼 출산을 권장하거나 억제를 할 수있는 시대는 지났다.
그러나 출산율 저하의 원인을 찾아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필요하다.
출산률 감소의 원인은 부족한 탁아시설과 과다한 사교육비 등 사회적 여건, 가정 살림의 궁핍 등 경제적 여건 등의 악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당장 출산율을 증가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없지만 출산과 모성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 출산과 육아에 대한 책임을 사회 전체가 분담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승권 가족복지인구정책팀장은 여성의 사회진출을 막고 있는 출산·육아문제를 방치할 경우 출산율 감소에 따른 국가경쟁력 약화가 현실화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대구여성회 김은희 회장은 "출산율 감소는 사회 총체적 모순이 빚어낸 현상으로 장기적이고 전문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며 "출산과 보육의 책임을 모두 여성 개개인에게만 돌리는 잘못된 인식부터 바꿔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김교영기자 kim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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