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카드 빚으로 생계 꾸린다

대구 서구 평리동에서 조그마한 밥집을 하는 이모(41)씨는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전화배달 손님 2∼3명이 고작인 나날이 벌써 몇달째인지 모른다. 외환위기 직후 알루미늄 공장에서 받은 퇴직금 700만원에다 은행에서 500만원을 빌려 차린 식당이 매달 은행이자 7만3천원도 갚지 못할 정도로 어렵다.

두 아들을 둔 이씨는 지난 달부터 부인 명의로 낸 신용카드의 현금서비스로 근근이 생계를 잇고 있지만 카드빚도 1천만원을 넘었다. 이씨는 "연체를 막기위해 만든 신용카드가 어느새 8개가 됐다"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두렵다"고 말했다.

늦장가로 고3수험생 아들은 둔 이모씨(55.대구시 수성구 황금동)는 다니는 섬유회사가 지난해까지는 그런데로 굴러갔지만 올해는 8개월째 월급을 미루고 있다. 이씨는 월급을 기다리다못해 3년만기 1천200만원짜리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했지만 매달 14만5천원의 이자를 못갚는 바람에 지난달 8일 "담보물로 잡힌 집을 경매처분하겠다"는 은행의 최후통첩을 받았다.

이씨는 "공부를 잘하는 아들 대학 입학금은 어떻게든 마련해야하는데.... 다른 직장을 구하려고 해도 길은 안보이고"라며 막막해 했다.

백모(31.대구 수성구 시지동)씨는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나 결혼하던 해인 지난 99년 직장을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집주인이 전세금을 1천만원이나 올려버렸다. 다급해진 백씨는 신용카드 대출서비스를 이용, 1천만원을 빌리긴 했지만 연체가 연체를 낳아 백씨의 카드빚은 3천만원으로 불어났고 카드빚을 갚기 위해 월 15%의 사채를 끌어쓰는 바람에 지금 백씨의 빚은 1억원을 넘어섰다.

백씨는 "지금 고통도 고통이지만 앞날이 전혀 안보이는 게 더 암담하다"며 고개를 꺾었다.

오랜 경제불황으로 빚으로 사는 서민가정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수많은 봉급생활자들이 은행·신용카드·사채로 이어지는 '부채 인생'으로 내몰리고 있고 영세한 가게는 손님이 끊겨 절망과 분노의 한숨을 토하고 있다.

한국은행 집계에 따르면 지난 3월말 현재 우리나라 가계빚은 총 276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22조원에 비해 54조원(24.3%)이나 증가했으며, 가구당 부채는 1천300만원에서 1천900만원(23.7%)으로 불어났다.

올 상반기 하루평균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금액이 4천6백70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2천2백40억원의 두배를 넘어섰고, 신용카드 연체율은 지난해 말 7.7%에서 지난 6월말 8.8%로 늘어났다.

이같은 신용카드 연체에 몰린 서민들은 월 30%에 이르는 '살인적 사채시장'까지 발을 디디며 가정파탄을 맞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경찰은 3개월째 대구시내에서만 수백여명의 사채업자를 잡아들였지만 서민들의 사채시장 이용은 좀체 줄어들지 않고 있다.

금융연구원 김병연 박사는 "경기침체로 급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제때 대출금을 갚지 못해 파탄지경에 이른 가계들이 많다"며 "서민들의 고통지수를 줄이기 위한 국가적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사회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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