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을을 연다-지역중견예술인 작업현장

(5)소설가 박일문씨

'살아남은 자의 슬픔'(민음사·1992년)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면서 문단에 떠들썩하게 데뷔했던 소설가 박일문(42). 그는 올가을 서울 관훈동 서재에서 '자유와 행복'이란 화두에만 매달릴 작정이다.

새로 쓰기 시작한 전작 장편소설, 죽음을 넘나드는 절박한 사랑 이야기. 출판사에 시냅시스를 갖다주니 100만부는 족히 팔릴 것이란 장담을 했다고 한다. 이것은 분명 기존 작품세계에 대한 파격의 서막이다.

대구에서 매일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온 작가가 서울로 창작공간을 완전히 옮긴 것은 4년전 가을. 다른 것은 몰라도 삶의 긴장이 있어서 좋다는 게 작가의 서울생활담이다. 그속에 작가정신도 문학도 같이 살아있는 느낌이라는 것.

그의 요즘 서울생활은 그만큼 바쁘다. 인사동에 있는 한 출판사에서 편집기획을 하고 번역도 한다. 그렇지만 '풍류'에 대한 미련은 여전하다. 청도 운문사 계곡이나 북한산 자락에 발을 담그고 '단청불사'를 즐기던 여유가 그립기만 하다.

지난 여름동안은 니체에 푹 빠져있었다. 지난해에 스피노자를 마쳤고, 다음에는 프로이드 전집을 구해 읽을 작정이다. 이같은 원전 읽기는 바로 작품에 녹아들곤 한다. 최근 출간한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란 부제의 장편 '도망쳐'도 들뢰즈 철학을 읽고 쓴 것이다. 그의 철학적인 사유는 이처럼 아직도 치열하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출가와 환속을 되풀이, '반승반속(半僧半俗)의 작가'로도 불린다. 지리산 화엄사와 경주 기림사, 백양사 말사인 문빈정사 등에서 5년간 수도생활을 하기도 했다. 문단에 데뷔하면서 하산했으니 소설가로 대승적인 삶을 택한 셈인가. 그런 운수행각의 삶은 '적멸'(민음사·1998년)이란 구도소설에 짙게 드리워졌다.

그는 서울에 있지만, 자신이 자란 도시 이야기를 쓰는 것을 작가의 기본의무라고 생각한다. "대구를 떠나면서 대구를 더욱 사랑하게 됐다고 할까요. 제 글은 대구를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고 봅니다".

국내의 포스트모더니즘 논쟁과 함께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도 그렇고, 새로 쓰는 장편의 작품 무대도 대구이다. 작가는 정치적으론 중도좌파를 표방해 왔다. 아나키즘의 정서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근래들어서는 '자유보수주의'를 염두에 두고있다. 온고지신을 강조한다. 박일문에게는 마니아 독자들이 상당수 있다. 그의 책도 기본적으로 3판까지는 팔린다. '자유와 행복'의 의미에 천착하고 있는 이 가을이 작가의 문학세계에 어떤 빛깔로 남을지 궁금하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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