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사람 '폭발적 진보성향' 내재

대구사람의 기질은 역사적으로 보수성이 강하고 전통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변화를 빨리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한번 변화를 수용하기 시작하면 근본까지 뒤흔들 정도로 엄청난 적극성을 지닌다. 강한 보수성을 바탕으로 한 신중함과 막판 결집력은 대구의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이 낳은 하나의 특성인데도 불구하고 정치현실이 이를 폐쇄성 내지 수구성이라는 이미지로 오염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1일 '역사속의 대구, 대구사람들'(중심 펴냄)을 펴낸 대구, 경북역사연구회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대구는 보수적이지만 결코 배타적이거나 폐쇄적이지 않고 오히려 진취적이었던 대구와 대구시민의 본래모습을 되찾지 않으면 한낱 군사정권의 하수인이었다는 오명을 영원히 뒤집어쓸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유의 보수성향 탓에 변화에 늦게 반응하면서 한번 변하기 시작하면 엄청난 적극성을 지닌 사례는 돔배기문화, 불교수용, 국채보상운동, 2.28학생운동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찍 불교를 받아들인 고구려, 백제와는 달리 이차돈의 순교라는 극적인 통과의례를 통해 신라는 불교를 수용하기까지는 1백년 이상 걸렸지만, 불교가 수용되자말자 파급속도는 고구려 백제보다 엄청나게 빨라서 우리 고대문화의 근간을 마련했던 것이다. 문화적인 특성이 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음은 돔배기 문화에서도 확인된다. 제사에 돔배기를 올린 전통은 경산시 임당동, 조영동의 5세기 고분에서 토기에 담겨진 상어뼈의 출현으로 확인이 될 정도로 역사적 격변기를 거치면서도 전통을 고수한 대구사람들의 기질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그렇다고 대구사람이 보수적인 것만은 아니라 진보적인 성향도 강하다고 이 회 회원인 경북대 주보돈(사학)교수는 주장한다. 종전 이후 국민들이 직접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한 제3대 대통령선거에서나 50년대 호남정치인(조재천)을 대구의 국회의원으로 선출한 예에서 진보적인 성향을 찾아볼 수 있다. 엄청난 부정으로 얼룩졌던 3대 대선에서 대구사람들은 진보당 조봉암 후보에게 72.3%의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반면, 자유당 이승만 후보에게는 27.7%만 표를 던졌다. 이런 진보성향은 계속돼 1960년 4월혁명이 일어나는 도화선 역할을 했던 2.28학생운동, 그리고 4월 혁명기의 반독재 민주화운동에도 대구가 중심이었으며, 전국에서 처음으로 교원노조가 설립됐고, 한국전쟁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 유가족으로 구성된 피학살자 유가족회도 이곳에서 결성될 정도로 진보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이 보수성향과 함께 공존했다.

대구에서 지역감정이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1963년 제5대 대통령선거에서부터. 이선거와 3선 개헌을 거치면서 지역감정이 선거전의 득표수단으로 활용되었고, 노골적으로 "경상도 사람은 왜 대통령을 하지 못하나"라는 조장발언이 터져나왔다.

"지역감정이 대구에서 통했던 이유는 일부 정치인들의 선동에 경제개발과 인사문제에 특혜를 준 결과"라는 허종 상주대강사는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은 외부요소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나를 잘 아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받아들일 때"라고 강조한다. 주교수는 "집권세력을 배출하는 과정에서 패권주의가 고착화되고, 지역정서가 난무하면서 아무리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주장이라고 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는 배타주의 내지는 독선주의의 모습을 지니게 됐다"고 비판하고, "보수성향에 진보성향까지 갖춘 지역적인 특성이 폐쇄 내지는 배타적인 성향으로 오인받지 않도록 마음의 문을 연다면 21세기 세계화시대에 가장 필요한 자질을 갖춘 곳으로 재도약할 수 있다"고 밝혔다.

최미화기자 magohalm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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