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루과이 라운드 10년 우리농업 어디로 가고 있나

(15)축산농의 고민

부친(83)의 뒤를 이어 한우 농사에 한 우물을 파고 있는 경주 남호경(52·한우협회 경북지회장)씨에게 올 한해는 끔찍스럽다. 1월에 소고기 시장이 열리자마자 우려했던 살아있는 소(생우) 수입이 4월에 시도됐던 것. 전국적인 저항운동의 한 가운데에 바로 남씨가 서 있었다.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1985년 경주 외동읍 구어리 4천평의 '목민농장'에서 한우 200마리를 키우고 있는 남씨는 "생우 수입을 그냥 놔뒀다가는 한우 산업이 끝장날 것이라는 위기감으로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했다. 그때 시위한 죄(?) 때문에 몇백만원의 벌금을 내야 할 상황이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다"고 했다.

영남대 축산과를 나온 아들과 함께 경주 모아면에서 한우 500마리를 키우는 '모아목장' 김영관(51)씨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또다른 한 아들까지 축산과에 진학시킨 그는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조상이 물려 준 한우를 지키는 일 뿐"이라고 했다.38년 축산농으로 150여 마리를 키우면서 갖가지 상도 탔던 성주 이교원(61·금수면 광산2리)씨는 1천만원이 넘는 이탈리아제 기계, 4천500만원짜리 톱밥 장비 등 기반 조성에만 3억원를 투입했다며, "소비자 입맛이 수입 소 쪽으로 돌아서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 올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우리 축산은 이미 IMF사태라는 원폭에 버금가는 파괴력에 맞아 그나마 구축해 놨던 많은 기반들이 붕괴된 상황이다. 1979년에 성주 벽진면 달창마을 18만평에 당시 경북 최대 규모로 문을 열었던 '보성농원'도 한 예. 한때 한우를 1천400마리나 키웠지만 지금 그 드넓은 목장이 황폐화돼 있다. 수십개 동의 축사·창고·퇴비장, 목부 아파트, 4만평이 넘는 초지·사료포 등은 잡초에 묻혀 있다.

한우 농가들은 이런 문제 이외에 국내적으로도 가혹한 상황을 되풀이해 겪어 왔다. 소 파동의 악몽은 몇년을 멀다하고 되살아 났었다. 값이 좋다는 지금도 예외는 아니어서, 축산을 전공한 아들(34)과 함께 성주 금수면 명천리에서 180여마리를 키우는 구진모(64)씨는 "소 값은 10년 전과 비슷한데 사료값은 20% 이상 뛰었다"고 했다. 목장 운영자금 등으로 1억원 가까이 넣었으나 이자 상환도 힘겹다는 것.문제의 핵심을 경주시청 전길형(50)씨는 "소 값 불안정"이라 지목했고, 도청 정승화 축산과장도 같은 분석을 제시했다. 영천 청통면에서 200여마리를 키우는 정경남(45)씨도 "값 등락이 심하고 수익성이 보장 안돼 불안해진 농민들이 소 사육을 기피한다"고 했다.

전국서 가장 많은 한우를 키운다는 경주 경우 1996년만 해도 그 규모가 1만1천여 농가 7만6천여마리나 됐으나 지금(6월 기준)은 6천700여호 4만4천여마리로 감소했다. 경북 도내 전체로는 1985년 20만호를 넘던 한우 농가가 4만6천여호로 줄었다. 전국적으로는 지난 6월 들어 150만7천마리로 사육 마릿수가 회복세로 돌아서긴 했으나, 지난 3월에는 사상 처음으로 147만6천마리까지 떨어졌었다. 한우 농가 숫자도 지난해까지는 30만호 이상을 유지했으나 지난 6월 말 현재 27만3천호로 감소했다.

안동 '운림농장'(서후면 자품리)을 운영하며 한우 2천200마리를 기르는 정균덕(56)씨는 "가격 등 사육 기반이 안정되지 않으면 국내 축산이 휘청거릴 수밖에 없고, 그러는 사이 수입 소고기는 시장 기반을 금방 뺏어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소고기 소비량은 날로 증가하는데도 한우 사육은 감소하니 그 비워지는 자리만큼 수입 소고기가 급속히 잠식 중이다. 소고기 자급률은 1998년 75.4%에서 2년만에 52.7%(작년)로 추락했다. 2010년에는 36%까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런 사정을 아는지 정부도 1995년부터 올 4월까지 무려 6차례나 '한우 발전 종합대책'이라는 것을 내놨다. 농림부 축산정책과 한우육성 담당인 노수현 서기관은 "2010년까지 한우 마릿수를 200만~225만마리까지 끌어 올리기 위한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다"고도 했다. 김대근 서기관은 "한우 기반이 흔들린 것은 사실이나 올들어 조금씩 사정이 나아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소와 달리 돼지는 1997년 시장 개방 이후에 상당한 경쟁력을 형성한 것으로 판단돼 있다. 소규모 농가는 점차 사라지고 기업형 돼지 농장이 기반을 잡았다. 그러나 수입사료 가격 상승과 구제역 파동 등이 아직은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서 도입한 최첨단 설비로 성주 초전·선남면 두 곳에 100억원 짜리 최신식 돈사를 갖춘 '신성농장'은 1만5천여평 돈사에서 6천여마리의 돼지를 기르고 있다. 그러나 1995년 10월부터 돼지 생산을 시작한 뒤 곧바로 IMF 폭격을 맞고는 경매에 내던져진 신세가 되고 말았다.

돼지 1만7천여마리를 키우는 성주 용신양돈장(선남면 용신리) 최재철(44) 대표는 "100억원이나 투자하고도 전체 운영비의 70%를 차지하는 사료값 부담이 만만찮아 경영이 쉽잖다"고 했다. 구제역 불똥이 사라지고 수출이 재개돼야 사정이 좀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정인열기자 oxen@imaeil.com

박준현기자 jh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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