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추경과 돈세탁 방지법

3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각 당마다 임동원 통일부장관 해임안에 대한 표점검에 분주한 가운데 이만섭 의장은 "추경안에 이의가 있느냐"는 말과 동시에 원안통과를 알리는 의사봉을 3번 쳤다. 이한구.심재철 의원 등 일부 야당 의원들이 고함을 치며 "이의있다"고 외쳤지만 이 의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의사봉을 친 뒤 나온 얘기"라며 묵살했다. 이미 여야 지도부간 합의로 추경안 원안처리에 합의했으니 당론과 다른 소수 의견은 소용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추경안 처리를 두고 한나라당이 보인 행태를 보면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다. 수차례 추경안 거부를 외친 한나라당은 김만제 정책위의장 주재로 이날 아침부터 당 예결위 회의를 갖는 등 분주했다. 오전 한때는 "독자적인 야당 수정안을 내고 정부안과 함께 표결처리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불법재원을 이용한 추경편성은 불가"라며 "불법 추경안을 강행할 경우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력 저지할 것"이라 외친 것도 불과 며칠전 일이다.

추경안과 함께 돈세탁 방지법도 동반 처리됐다. 여야가 정치자금 계좌추적권을 두고 몇달간 신경전을 벌였던 점을 감안하면 싱거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그 내용도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계좌추적권을 돈세탁 혐의가 있는 외국환거래에 대해서만 한정, 국내에서 거래되는 불법 정치자금은 규제를 피해가게 한 이빨 빠진 법안이었다. "정치자금을 해외.국내거래로 갑자기 구분한 이유가 무엇이냐" "정치자금에 해외거래도 있느냐"며 일부 의원들이 토를 달았지만 임 장관 해임안에 밀려 공허한 얘기가 됐다.

임 장관 문제를 두고 맞선 정치권이 추경안과 돈세탁 방지법을 슬쩍 처리한 것은 일종의 '빅딜'이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임 장관 해임안 표결처리와 추경안.돈세탁방지법을 맞바꾸었다는 얘기가 정치권 주변에서 흘러나왔다. 해임안 처리를 전후해 여야는 "국민의 승리","정치도의를 저버린 행위"라며 상반된 성명을 계속 쏟아냈다. 그러나 5조555억원 규모의 추경안 처리나 국내에서 거래되는 불법 정치자금 규제를 피해간 돈세탁 방지법에 대해선 여야 모두 입을 굳게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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