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배추잎 뒤에 붙어숨어사는 세상

불안하고 답답하고 지루하여라

온몸으로

온종일 꿈틀거려도

나의 삶, 배추잎 한 장에 불과하였네

말없이 눈물없이 일요일도 없이

날 수 없는 날개 사무치게 간직한

배추잎 한 장으로 세계를 덮었네

내가 짠 실로 내 몸을 묶어

움츠릴 대로 움츠려서 갇힐 때까지

죽었다고 남들이 말할 때까지

눈부신 흰 날개에

하늘을 싣고

배추밭을 넘어서 날을 때까지

-서종택 '배추벌레'

어느날 문득 자신의 삶이 배추잎에 붙은 한 마리 벌레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카프카의 '벌레'와 같은 실존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차원에서 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다.

IMF 이후 우리 서민들의 삶이 더욱 그렇다. 온몸으로 온종일 꿈틀거려도, 말없이 눈물없이 일요일도 없이 기어다녀도 배추잎 한 장을 벗어날 수 없는 삶. 그러나 눈부신 흰날개에 하늘을 싣는 그 희망만은 놓지 말자!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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