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총리 유임 명분 없다

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의 총리직(職) 잔류 선언은 우리를 착잡하게 한다. 이 총리는 지속적인 국정개혁과 남북 화해를 위해 총리직에 유임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이러한 이 총리의 잔류선언이 대의명분에 어긋날 뿐더러 '책임 정치'라는 측면에서도 동떨어지는 것으로 지적지 않을 수 없다. 8·15 평양축전 이후 국론분열에 대한 책임을 물어 통일부장관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이 마당에 이의 연장선상에서 내각을 통할하는 총리가 도의적 책임을 진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 총리가 "총재로서 당에 대한 의무보다 국민에 대한 책무를 우선키로 했다…"면서 굳이 총리직에 매달린 것은 궤변에 가깝다. 원론적으로 따진다면 이한동 총리 체제가 출범한 것은 DJP 공조체제의 산물이다. 그런 만큼 공조 붕괴가 선언된 현 시점에 이 총리는 총리직을 물러나 자민련으로 원대복귀 하는 게 정치도의상 옳았다는 판단이다.

자민련에 빌려준 민주당 의원들이 공조붕괴와 함께 즉각 원대복귀한 것만 봐도 이 총리의 처신이 어떠해야 했는지 명확한 것이다. 의원 이탈로 자민련이 원내교섭단체 자격마저 상실한 마당에 이 총리가 자민련에 잔류하겠다는 것은 해도 너무하는 처사다. 자민련에 그만큼 상처를 주고도 오히려 한 술 더떠는 후안무치에는 말을 잃게 된다.

우리 정치는 이미 정도(正道)를 벗어난지 오래지만 그런 터수에도 이번만은 너무했다. 기왕에 공조가 붕괴됐으면 정부여당은 그 결과에 승복하고 국민을 위한 정치, 상생(相生)의 정치에 발벗고 나설 것이지 끝까지 이한동 총리를 유임시켜 자민련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그 '술수'에는 참으로 식상한다. 임명된지 보름만에 자민련 몫의 장관이 사퇴하는 판에 명색이 자민련 총재인 이 총리를 눌러앉혀서 어떻게 하겠단 말인가. 국정쇄신을 바라는 국민들에게 이번 '총리 유임'은 쇄신이 이미 물 건너 갔음을 의미한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큰 정치를 하려면 때로는 '물러날 때를 잘 선택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실을 다시한번 깨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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