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듯 9월, 가을의 언저리. 상큼한 가을바람. 그러나 아직은 이렇다할 단풍소식도 이른 시기. 이럴 때 충청도 땅 제천과 충주는 한번 쯤 밟아볼 만한 고장이다. 시끌벅적한 명소보다 더 매력이 가는 곳이다.
태백권의 관문 제천이나 월악산을 곁에 끼고 있는 충주에 들어서면 먼저 가슴이 확 뚫리는 것 같다. 두 도시 모두 물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다 충주호반(제천에서는 청풍호반이라 부름)을 따라 이 굽이 저 굽이 돌때마다 길손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비경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가다가 박달재 호젓한 곳에 차를 세워 놓고 '천둥산 박달재를…'한가락 뽑아보는 여유를 부려볼 수도 있다.
제천기행의 들머리 의림지(제천시 모산동 241)로 달린다. 중앙고속도 서제천IC에서 제천시내를 거쳐 북쪽으로 4㎞, 약 10분거리에 있다. 안내판에는 '삼한시대에 심(心)자형으로 축조, 김제 벽골제·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리시설…'이라고 교과서처럼 또박또박 적혀 있다.
둘레가 약 2㎞, 수심 8∼13m인 의림지는 남쪽과 서쪽에 영호정과 경호루라는 예쁜 정자와 누각이 있어 운치를 더한다. 자칫 허전해질만한 제방 한 쪽을 메워주고 있다고 할까. 수백년은 됐음직한 소나무 숲은 한여름에도 시원한 그늘이 된다. 한 낚싯꾼은 입질이 별로라고 고개를 내 저으면서도 "겨울철에 빙어낚시나 한번 오라"고 일러준다.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왔다는 조난숙(30·제천시 신백동)씨는 "의림지의 잔잔한 수심을 바라보고 있다보면 한나절이 금방 지나간다"며 "왠지 모르지만 마음이 편안해져 이곳을 자주 찾고 있다"고 자랑한다. 테마랜드 등 위락시설도 갖춰 놓았다.
다음은 충주다목적댐 공사가 탄생시킨 충주호반 나들이. 청풍면쪽으로 달리다 보면 문득 차를 세워야 할 이유 하나가 생긴다. 마치 조각을 빚어놓은 듯한 기암괴석군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작은 금강산'으로도 불리는 금월봉이다. 원래 시멘트 제조용 점토 채취장으로 사용되다 발견된 곳. 사진 한장은 찍고 가야겠다는 듯 사람들이 좁은 곳에서 북적인다. 충주호를 찾는 사람들에게 보너스 하나가 더 생긴 셈이다.
금월봉에서 5분거리에 '태조 왕건' 해상촬영장이 있다. 후삼국시대 무역항이었던 예성강 입구 벽란도 포구 세트장이다. 수군 관아와 선착장, 초가, 망루 등이 눈길을 끈다. 왕건 드라마 초기 수군지휘 장면 등을 찍었다고 한다. "TV에서 보던 장면과는 비교가 안되네". 누군가 수군거린다. 그러나 어떠랴. 1000년 전 고려 마을에 왔다 간다고 생각한다면….
청풍대교를 건너면 청풍문화재 단지. 지대가 높으니 시원하고 무엇보다 호반을 내려다보는 맛이 그만이다. 호반 가운데 있는 수경분수. 물길이 100m 이상 솟구치는 장관을 연출한다. 시간을 정해 작동하는 분수가 올라가면 사람들이 우루루 호반쪽으로 몰린다. 단지 안에는 마을과 관아 등 수몰 전 문화재가 고스란히 옮겨져 전시돼 있다. 불과 몇 십년전 우리가 살던 집들과 생활 유물이 호기심을 자극한다신유박해 200주년 기념 영상물 '정약종과 신유박해(가칭)'를 제작중이라는 조양희(32·PD·프리랜서)씨는 스탭과 연기자들에게 연신 고함을 지른다. 한켠에서는 갓쓰고 수염달고 분장이 한창이다. 관광객들에게는 때아닌 볼거리. 촬영장 주변은 금방 인파에 둘러싸이고 만다.
충주호반의 종착점은 선상유람. '내륙속 바다'를 배로 둘러 보는 것이다. 드리운 뱃길만 130리. 그 중에서도 유려하고 섬세하기 그지없는 선상코스는 청풍나루에서 단양 장회나루 사이가 최고로 손꼽힌다.
노진규기자 jgroh@imaeil.com
▨가는 길=중앙고속도 풍기IC에서 내려 5번 국도를 탄다. 단양에서 제천까지는 30분 남짓. 제천시내에서 의림지로 간다. 의림지에서 다시 제천시내를 거쳐 단양방면으로 내려오다 청풍·수산방면 597번 도로로 옮겨 타면 금월봉, 청풍문화재 단지가 연이어 나온다. 36번 국도를 만나는 수산삼거리에서 충주·수안보 방면과 단양·풍기 방면으로 갈린다.
△박달재=유명한 애창가요'울고넘는 박달재'의 소재가 된 곳. 제천시 봉양읍 원박리에 있다. 경상도 선비'박달'이와 이 고개 아랫마을 처녀'금봉'의 애절한 사연이 담겨 있다. 제천에서 충주로 넘어가는 38번 국도를 타고 가다 구도로를 찾아 올라가야 한다. 새길이 나는 바람에 지금은 차량 통행마저 뜸하다. 선비 박달과 처녀 금봉의 조형물과 노래비만이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영화 '박하사탕' 촬영지=제천시 백운면 애련리 진소부락에 있다. 영화속 주인공 영호가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절규하며 기차의 기적소리에 묻히고 마는 인상적인 곳이다. 영호가 첫사랑과 함께 소풍갔던 철교, 제천천, 고즈넉한 주변 산자락 등 영화속 풍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월악산=2개도 4개 시군에 걸쳐 있는 국립공원. 주봉인 월악영봉(1,094m)을 비롯, 중봉·하봉 등의 기암단애가 맹호처럼 연이어지는 산세가 웅장하다. 정상에 올라서면 충주호의 잔잔한 호수가 눈 아래 사방으로 펼쳐진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