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산맥을 가다-(1)힌두쿠시-(2)다르쿳 패스

◈힌두쿠시-(2)다르쿳 패스 "힌두쿠시 산맥을 향해 힘차게 출발!"

우렁찬 기합소리와 함께 7월 15일 오전 8시 발대식을 가진 탐사대는 야영지인 다르쿳 마을을 벗어났다. 왼쪽으로 가무바르 빙하를 조망하며 계곡을 거슬러 올랐다. 3일동안 차에 시달린 몸이 자유를 찾은 듯 상쾌하다. 한여름인데도 빙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땀도 흐르지 않는다. 탐사대 뒤로 다르쿳에서 고용한 포터 25명이 당나귀 6마리를 끌고 따라온다. 길 옆의 농가는 너무나 평화롭다. 누렇게 익어가기 시작하는 보리밭은 고향처럼 정겹다. 오전 10시 40분 해발 3천m의 라왓에 도착했다. 강아지 풀과 노란 꽃들이 가득 피어있는 아름다운 목초지다. 눈부신 만년설이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다. 멀리 빙하 녹은 물이 기차소리만큼이나 우렁차게 들린다. 따뜻한 햇살을 즐기며 풀밭에 앉아 점심을 먹으니 오지 탐사가 아니라 봄소풍을 온 것 같다.

라왓부터 본격적인 산행이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니 서서히 숨이 가빠온다. 고소 적응을 위해 지그재그로 걸었다. 20kg이 넘는 카고백 4개를 등에 짊어진 당나귀들도 침을 흘리며 힘겨워 한다. 해발 3,700m부터는 당나귀가 오를 수 없는 바위길이다. 등짐에서 해 방된 당나귀들이 춤을 추듯 껑충대며 라왓으로 돌아간다. 5시간만에 도착한 야영지엔 찬 바람이 몰아쳤다. 봄날씨에 취해 있던 대원들이 황급히 윈드재킷을 꺼내 입었다. 해발 3,800m. 하루만에 1,100m나 고도를 올렸다. 몇몇 대원이 머리가 아프다며 고소증 약을 꺼내 먹는다. 고소증이 이런 것인가? 텐트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주기적으로 가슴이 무겁고 답답해져 온다. 심호흡을 하며 신선한 바깥 공기를 마시고 나면 한결 편해진다. 다음날 오전 7시 다르쿳 패스를 향해 떠났다. 해발 4,400m인 다르쿳 패스는 747년 8월 고구려 출신 당나라 고선지 장군이 티베트와 아랍세력인 사라센 제국의 동맹을 깨기 위해 이 고개를 넘어 소발률국을 정복하는데 이용한 역사적 장소다. 출발한지 얼마 안돼 폭 10여m의 개울이 나타났다. 등산로는 개울 건너편으로 이어져 있다. 할 수없이 등산화를 벗어 들고 개울에 뛰어 들었다. 빙하에서 흘러 내린 물이 얼음처럼 차다. 불과 열발짝 걸었을 뿐인데도 발이 얼얼하다. 개울을 건너자 거대한 빙벽이 나타났다. 높이가 400m는 됨직하다. 한줄로 늘어서 먼저 출발한 포터들은 고무신만 신고도 빙벽을 쉽게 올라간다. 언뜻 보기엔 빙벽에 길이 나 있는 듯 하다. 그러나 막상 가까이 가자 그게 아니었다. 포터들이 디딘 빙벽엔 흙이 조금 묻어 있을 뿐 비탈진 얼음벽 그 자체였다. 자칫 미끄러진다면 끝장이다. 하지만 되돌아갈 수는 없는 일. 일단 손과 발을 이용해 달라붙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니 생각보다 위험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빙벽은 끝이 안 보인다. 언제 이 빙벽을 다 올라가려나 암담하다.

그때 도움의 손길이 뻗쳐왔다. 보조 가이드 이지하라(23)씨였다. 그의 억센 손에 이끌려 30여분 진땀을 뺀 후 마침내 다르쿳 고개에 올라섰다.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설원. 기가 질린다. 저 멀리 포터들의 행렬이 개미가 한줄로 기어가는 것 같다. 이지하라씨에게 가까운 봉우리를 가리키며 이름이 뭐냐고 묻자 5,000m급 봉우리는 높이가 낮아 이름이 없단다. 한국에서면 최고봉으로 대접받을 산들이 여기서는 무명봉으로 만족해야 한다. 우뚝 솟은 흰산을 보며 설원을 걸으니 신선이 된 기분이다. 그러나 일부 대원들은 또다시 고소증세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헛것을 보거나 제자리를 빙빙 맴도는 대원도 있다. 말로만 들은 크레바스 지대에 접어들었다. V자 모양으로 설원이 쩍 갈라져 있다. 수직 절벽으로 깊게 패인 크레바스는 입 큰 괴물같다. 이지하라의 발자국을 따라 크레바스를 뛰어넘기도 하고 빙 둘러가기도 하며 5시간의 천신만고 끝에 다르쿳 패스를 넘었다. 날씨가 좋아 아무런 사고가 없어 천만다행이었다.

하산길도 만만치 않았다. 단단하게 얼어붙은 빙하를 30여분 걸어간 후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너덜지대를 올라가야 했다. 고소증세로 바위에 주저앉은 대원들은 불러도 일어서지 못한다. 오후 7시가 돼서야 파김치가 된 몸으로 야영지인 치카르에 도착했다. 높이 3,600m에서 흐르는 차디찬 도랑물에 세수를 하자 코피가 터졌다. 얼른 텐트로 돌아와 안정을 취하니 오늘 산행이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글.사진:박헌환기자 pt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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