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미국의 시민정신

6.25전쟁이후 최대의 국난이라 했던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직후 우리 국민들의 '금모으기 운동'을 미국을 비롯한 세계언론이 격찬한 바 있다. '한국민에게 저런 저력이 있는 한기필코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바로 그 '금모으기 운동'이란 시민정신이 '전국민이 하나'가 되는 원동력이 됐고 그 결과의 소산이 IMF 조기졸업으로 나타났다.이에는 일본에 진 빚을 민초들이 푼푼이 모아 갚겠다고 팔걷고 나선 '국채보상운동'의 '배달겨레정신'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2차대전이후 최대의 국난에 봉착한 미국에도 지금 바로 이 '시민정신'이 미국을 하나로 묶어 놓으면서 뒷수습에 나서고 있다. 우선 무역센터건물붕괴로 수많은 부상자들이 생겨나면서 수혈할 피가 모자란다고 방송에서 호소하자 병원마다 헌혈시민들이 장사진을 이뤘다고 한다. 어느 회사원은 길게는 8시간이나 기다렸다가 헌혈했다고 하는 대목은 우리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바로 이게 위기에 처하면 미국을 인종도, 종교도 초월해 하나로 뭉치게 하는 '이상한 힘'으로 작용, 극도로 복잡한 사회구조의 미국이 지탱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그뿐 아니다. 그 혼란한 틈이면 으레 있을 법한 약탈사건마저 거의 없었다는 건 '시민정신'이 '범죄심리'마저 잠재우는 또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되기에 충분하다. 게다가평소에 잊고있던 성조기가 불티나게 팔려 불과 하룻새 월마트 소매업체에서만 11만장의 매출을 이뤘다 한다. 테러가 미국민의 애국심을 고취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조기(弔旗)를 주택이나 차량에 달기위한 '매출급증'현상이다. 이 애국심은 젊은이들에게 확산, 캘리포니아 베이커필드 모병소를 비롯, 전국적으로 입대문의가 폭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입대해 보복응징에 나서겠다는 미국 청년들의 애국충정을 단적으로 부여준 '입대열기'였다.

▲무엇보다도 눈여겨 봐야할 대목은 피츠버그에 추락한 여객기 탑승자들의 교신내용이다. 30대 후반의 한 승객은 그의 아내에게 휴대폰으로 "우리는 모두 죽게 되겠지만 그래도우리 셋은 뭔가 할거야…" 라고 말한게 공개됐다. 미국정보기관은 이번 피랍여객기들은 백악관 등을 공격목표로 삼았는데 일부는 중도에 추락해 실패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결국 이 여객기 승객들은 범인들과의 격투로 그들의 목적을 저지시켰다는 추측을 낳기에 충분한 전후사정이 아닌가. 미국시민정신은 이렇게 죽음으로 조국의 큰 사고를 막고 사상자들을 위한 헌신, 군입대 등등 여러 형태의 애국심으로 승화되고 있다. 이게 우리가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깊이 새겨봐야 할 대참사 이후 미국의 참모습이다.

박창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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