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된장찌개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시냐?"고 물으면, "먹고삽니다"라는 대답을 가끔 듣게 된다. 음미해 보면, 참 묘한 말이다.

먹는다는 것이 산다는 것의 최소 필요조건임을 말할 것도 없지만, '먹고산다'는 말은 한편으론 아주 시니컬하게 들리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그런대로 살만하다라는 말로도 들린다.

여러달 전에 유럽 쪽에서 발견된 광우병으로 언론들이 떠들썩할 때, 단골로 가던 갈비집에 오랜만에 들렀더니 그렇게 성황을 누리던 그 집이 그야말로 파리를 날리고 있었다. 아! 지구촌이라더니! 지구 저쪽 반대편에서 발생한 광우병이 거의 동시간대에 우리나라의 갈비집들을 초토화시키는구나! 그런데 요즘 들어, 영천에서 콜레라가 발생되었다고 난리를 치니, 광우병시절 그 번성하던 횟집들이 갑자기 한산해지고 있었다. 어느새 광우병은 우리의 기억에서 퇴장! 갈비집은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북적대고 있었다.

우리가 주로 찾는 외식의 대표적인 곳이 갈비집과 횟집이라면 이렇듯 특정 음식에 치명타를 날리는 뉴스가 나오면, 우리는 잽싸게 이리 가고, 또 저리 가곤 한다. 그 가벼움이여! 그런데 그런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고 시국에 흔들리지 않으며 독야청청, 꾸준히 손님을 받아들이는 외식메뉴가 있다면 그건 바로 한식집들일 것이다.

콜레라가 기승을 부리든, 지구 저 반대편에서 광우병이라는 폭탄이 날아오든, 우리의 한식집들은 끄떡없다. 김치와 된장찌개를 대표상비군으로 하여, 식물성 재료를 위주로 하여 각종 밑반찬을 만들어 먹는 우리 소박한 한식은 이렇듯 의연한 음식들이다.시류에 흔들리는 겁 많은 인간군상들에 비해 된장찌개의 그 의연함, 그 흔들리지 않는 위상이 정말 자랑스럽다.

김치가 있고 된장찌개가 있기에 우리는 언제나, 누가 물어도 '먹고삽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쇠고기를 못 먹게 되어도, 회나 어패류 같은 것들을 못 먹게 되는 사태가 한 동안 온다 해도, 화려하지 않은 마누라 같은 김치와 된장찌개가 있으므로 우리는 먹고는 산다.

구수하고 그윽한 된장찌개 냄새가 오늘따라 더욱 정겹다.

(주)나래기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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