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희랍의 철학자 플라톤은 '인간은 털 없는 두발 짐승이다'라고 정의했다. 역시 철학자였던 디오게네스는 그 당시 털을 벗긴 닭 한 마리를 들고 강의 중인 플라톤 앞에 나타나 '이것이 바로 플라톤의 인간이다'라며 조소를 보냈다. 그는 빈 술통을 집 삼아 굴러다니다가 아카데미아의 학자들이 나타나면 우산으로 술통을 가리곤 했는데, 바로 그 '디오게네스의우산'이 기존 학설이나 이념의 주의·주장에 맹종하지 않는 용기와 지혜의 대명사가 됐다.
▲인간은 이 우주에서 티끌에 지나지 않은 존재일는지 모르지만 그 신비를 푸는 지혜를 지녔다는 점에서 위대하다. 코페르니쿠스·갈릴레이·케플러·뉴턴 등은 근대 과학의 실마리를 풀어냈으며, 근대 생물학의 출발점은 다윈의 '종의 기원'(1859년)이다. 하지만 1953년 왓슨과 크릭이 DNA 구조를 밝혀낸 이후 생명 현상의 원리에 접근할수록 그 신비의 복잡성은 과학자들마저 놀라게 하고 있다.
▲경북대 황의욱 교수가 최근 발간된 영국의 '네이처'지에 '지네와 거미가 같은 조상이고, 매미와 새우도 사촌'이라고 주장한 절지동물의 새 계통도를 발표해 주목을 받고 있다. DNA 분석으로 곤충의 족보를 재작성한 이 논문에서 황 교수는 갑각류(게·새우 등)와 곤충류(매미·나비 등), 다지류(지네·노래기 등)와 협각류(거미·전갈 등)는 같은 조상관계에 있을 만큼 가깝고, 이 2개의 군(群)도 근연 관계라고 밝히고 있다.
▲이 주장은 지금까지의 정설을 뒤집고 있어 생물 교과서가 새로 쓰여져야 할는지도 모를 일이다. 곤충형 머리류에 속하는 곤충류와 다지류가 같은 조상 관계이며, 곤충형 머리류는 또 갑각류와 근연 관계에 있으나 협각류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학설 가운데 정설로 굳어져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이처'지는 기존 학설을 옹호하는 하버드대 기리벳 교수의 논문도 함께 실었듯이 논쟁이 예상되기도 한다.
▲황 교수의 이번 연구는 그간 위치가 불명확했던 다지류가 협각류와 매우 가깝다는 사실을 새롭게 밝혀냈다는 점에서 세계의 생물학계는 일단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지구촌에서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겨냥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국가간의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 이 분야의 발전에는 그야말로 쉴 틈마저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디오게네스의 우산'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기존 학설에 새롭게 도전하는 과학자들이 속속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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