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삶-불혹 넘어 교단에 선 손호만씨

대구시 달서공업고등학교와 제일여자정보고등학교 겸임 역사 교사 손호만(44)씨. 그는 1977년 대학(경북대학교 사범대 역사교육학과)에 입학, 24년만인 지난 8월 졸업했다. 그리고 9월 1일 교사로 임용됐다. 손씨의 졸업이 그토록 오랜 세월 유예된 것은 그가 특별히 공부에 취미가 없었던 때문도, 학비를 내지 못할 만큼 가난한 가정 형편 탓도 아니다. 그는 1977년 입학 후 2001년 8월 졸업 때까지 3번의 제적과 재입학을 반복했다.

손 교사는 강원도 원주 사람이다. 그의 강원도 사투리는 물 흐르듯하지 않고 무슨 구호를 외치듯 토막토막 끊어진다. 원주 사람들이 흔히 그런 것인지 노동 운동가의 흔적이 남은 때문인지 분별하기 힘들다.

손호만씨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학교와 집으로 난 길을 충실하게 오갔고 특별히 부모님을 애타게 한 일도 없었다. 대학에 입학하지 않았다면 그는 평범한 아버지, 평범한 할아버지로 늙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손씨의 평범한 삶은 대학 2학년이던 1978년 11월 '긴급조치 9호 위반자'로 낙인찍히면서 끝나고 만다. 유신헌법 반대 시위 사건에 연루된 것이다. 이어진 제적과 재입학, 그리고 구속과 석방의 반복. 때로는 시위나 시위 음모죄로 체포되었고 민간인 신분으로 군사재판에 회부돼 군 형무소에서 복역하기도 했다. 1년 6개월의 수인(囚人) 생활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매질과 욕설뿐이다. 종일 두들겨맞는 게 일상이었고 쓰러지면 그대로 잠들었다. 그리고 깨어나면 또다시 매질이 이어졌다. 석방 후에는 언제나 예리한 눈초리의 감시를 받았고 걸핏하면 도망자가 돼 집을 떠나야 했다.

강제 징집된 군복무 시절에도 오랫동안 보안대에서 감금생활을 해야 했다. 당시 보안대에 끌려왔다 의문사한 한양대생의 죽음에 대해 뒤늦게나마 진상조사를 신청해놓은 상태다.

87년 마지막 석방 후 그는 기독청년협의회 총무로 노동운동에 몰두했다. 3번의 구속과 석방을 반복하는 동안 이 땅의 빈민과 그들의 땀내나는 노동현실을 익히 알고 있었던 터였다. 87년 이후 거세게 불었던 민주화 운동과 산업현장의 노동운동에도 그는 청년 시절 한 움큼을 바쳤다. 노동 착취와 싸우는 동안 폐결핵을 앓아 두 가지 싸움을 동시에 치르기도 했다.

손씨가 '생활인'으로 돌아온 것은 93년. 그 후 7년 동안 아파트 건설현장과 고속철도 공사장에서 철근 인부로 일했다. 거친 노동에 조금도 어울릴 성싶지 않는 가느다란 팔로 무거운 철근을 나르고 기둥을 세웠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2000년 3월 3학년에 재입학했고 올해 8월 졸업할 수 있었다.

'생활인'으로 돌아온 교사 손호만을 나이 어린 운동가들은 '변절자'로 몰아세울는지 모른다. 성공한 '생활인'은 '거 봐라' 하며 '손호만의 투쟁'을 치기나 소영웅주의로 치부할는지도 모른다."맞습니다. 저의 운동은 다소간 분명히 치기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그 덕분에 노동 현실을 정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하지 않았다면 저는 평생 우리 나라의 노동현실을 모른 채 살아가야 했을 것입니다" 손씨는 운동의 출발이 어떠했든 간에 그 자신에게는 중요한 학습의 기회였다고 말한다. 피눈물나는 체험적 학습을 통해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모순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후 50년 동안 우리 사회는 상당히 안정화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모순이 없습니까. 안정된 사회에서 모순을 찾는 일은 어렵습니다. 일부러 신경을 쓰지 않으면 한 꺼풀 숨겨진 모순을 결코 찾아내지 못합니다". 손씨는 군사정권의 압제는 이미 끝났지만 민주화는 완성되지 않았고 삶의 질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현시대를 '무차별적 경쟁과 시장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라고 결론짓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손호만씨는 우리는 이 동물적 투쟁 사회에서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제 역사 교사로 다시 출발한 손호만 선생님은 왕조와 귀족의 역사가 아닌 눈물과 땀이 배인 민중의 역사를 가르치고 싶다고 말한다. 인간을 위한 그의 운동이 결코 끝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두진 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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