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산맥을 가다-(1)힌두쿠시-(3)코요좀

◈힌두쿠시-(3)코요좀(6,872m)

다르쿳 패스를 넘어 도착한 첫마을인 치카르는 야르쿤강의 지류를 따라 발달한 광활한 목초지로 푸른 보리밭이 물결치고 있다. 편평한 검은 돌을 쌓아 지은 집 두어채만이 오롯이 놓인 한 폭의 풍경화 같은 곳이다. 힌두쿠시 산맥은 고요한 새벽 안개에 휩싸여 있다. 7월17일. 아침식사를 하며 제헌절 공휴일마저 강행군해야 하는데 의기소침해진 대원들에게 가이드는 내려가는 길에 온천이 있다는 희소식을 전한다. 빙하에서 흘러내린 야르쿤강을 따라 신나게 걸었다.

그때 한 무리의 등반대가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영국 고등학생 40여명이 방학을 이용해 지도교사의 인솔하에 힌두쿠시 산맥을 탐사왔다고 한다. 이같은 오지에서 또 다른 탐사대와 조우하자 동료애를 느꼈다. 멋진 트레킹이 되라고 서로를 격려했다. 하지만 체력이 떨어지는 고등학생들이 빙하의 다르쿳 패스를 무사히 넘을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비탈길을 내려오다 뒹굴었는지 옷이 흙투성이인 학생도 보였다.

3시간 30분만에 해발 3천500m에 위치한 온천에 이르렀다. 우물처럼 만든 곳에서 33~35℃의 따뜻한 물이 흘러 나왔다. 그러나 온천주위가 너무 지저분했다. 탐사대는 삽을 빌려 배수로를 정비하고 자갈을 새로 깔아 주었다. 현지인들이 고마워 했다. 수량이 부족해 온천욕은 못했다.

12명의 전대원이 라면 10개를 나눠먹고 자갈투성이 길을 내려오다 보니 저 멀리 야르쿤강 건너편에 우뚝 선 설산이 눈에 확 띈다. 힌두라지 산맥의 최고봉 코요좀(6,872m)이다. 파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친 코요좀은 거대한 은빛 다이아몬드였다. 코요좀의 아름다운 자태에 매료된 탐사대는 근처 풀밭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날 도착한 라쉬트는 전기와 병원이 있는 제법 큰 마을이다. 하지만 아직 해발 3천150m. 어제부터 줄곧 걸어 내려왔는데 고도를 고작 450m밖에 낮추지 못했다. 라쉬트에서 지프 2대를 섭외하여 탐사대 짐을 먼저 보내고 대원들은 지프가 되돌아와 태워줄 때까지 걸었다. 현지 요리사가 만들어 준 감자요리로 점심을 때웠다. 마을 청년이 차를 끓여 주었다.

볼펜 등을 달라고 떼쓰던 꼬마가 담배를 꺼내 피워 대원들을 놀라게 했다. 오후 5시가 되어서야 지프를 탈 수 있었다. 야영지 와샴에 이르자 먼저 온 가이드가 살구와 복숭아를 준다. 파키스탄에 온 이후 과일을 전혀 먹지 못한 터라 허겁지겁 먹었다. 복숭아 는 우리나라 것보다 작지만 꿀맛이다. 별이 초롱초롱 빛나는 밤이 어슥해지자 현지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든다.

텐트 주위로 자리를 잡더니 양철 휘발유통 2개를 악기 삼아 노래를 부른다. 난타 공연을 보는 것 같다. 노래에 맞춰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춤을 추자 꼬마들도 덩달아 몸을 흔든다. 김용욱 대장이 귀엽다며 볼펜을 나누어 준다. 이방인을 반갑게 맞아주는 그들의 마음이 고마운 밤이다.

다음날은 종일 지프로 자니고개 아랫동네인 우틀까지 이동했다. 텐트를 치자 마을 주민들이 기다렸다는 듯 몰린다. 어른이건 아이건 남자들 차림새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원피스 치마같은 옆 트인 긴 상의와 바지뿐이다. 가격도 우리 돈 1만원정도 옷에서 느낄 수 있는 빈부의 격차는 찾아볼 수 없다. 아이들은 카메라만 보면 서로 자기를 찍어 달라고 조른다. 주소까지 적어주며 사진을 보내 달란다. 저녁으로 닭고기가 나왔다. 고산의 닭은 먹을 게 못된다. 고래 심줄같이 질기다. 십여분 걸려 겨우 한 조각 먹고는 모두들 손을 내젓는다.

날이 밝자 길안내 포터를 앞세워 3천750m높이의 자니 패스를 오르기 시작했다. 고소에 적응이 된 대원들을 이젠 포터들이 따라잡지 못한다. 4시간 동안의 트레킹에서 고도가 1천m이상 높아졌는데도 머리가 아프다는 대원이 없다. 자니 패스를 넘자 팍팍한 흙길에 따가운 여름 햇살이 내리쬔다. 굵은 땀방울이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이마와 목덜미로 줄줄 흐른다. 갈라진 입술엔 피딱지가 말라 붙었고 발은 물집으로 부르텄다.

트리치미르 등반 초입마을인 샤그람 주민들도 탐사대원들을 구경하기 바쁘다. 무엇인가만 꺼내면 죽 둘러서서 낯선 이방인들을 바라본다.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이다. 그래도 얼마나 순박한 마음씨를 가졌는지 대원들이 세워 놓은 스틱이나 배낭이 옆에 있어도 절대 손을 대지 않는다. 눈으로만 호기심을 만족시킬 뿐이다.

현지주민들은 만나면 반갑게 포옹하고 서로의 손을 잡아 끌면서 인사를 한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살지 않는 황량한 산, 진흙탕으로 흐르는 강, 바람에 뿌옇게 날리는 먼지…. 척박한 환경 속에서 자연에 순응,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야영지 옆으로 원시의 생명력이 꿈틀대는 트리치미르강이 우렁차게 흐른다.

글.사진=박헌환기자 ptr@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