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이슬라마바드에서 서쪽으로 250여㎞ 떨어진 아프가니스탄 국경도시 토르크햄을 다녀오는데 꼬박 12시간이 걸렸다.
이슬라마바드 서쪽 165㎞지점에 위치한 국경 최대도시 페샤와르에 이르렀을 때까지만 해도 모든게 수월했다. 4차선으로 뻗은 도로변의 풍경이나 페샤와르 시내의움직임들에서 전쟁이 임박했음을 느낄 수 있는 불안이나 공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전쟁이 다가왔다는 요란스런 보도에도 아랑곳없이 도로 변의 마을 마다 시장이서고, 바나나와 냉차,담배를 파는 노점상들도 어떻게든 손님을 모으려고 열심이었다.
요란한 치장을 한 버스와, 락샤라고 불리는 샴륜택시, 승용차, 트럭이 도로를가득메우고, 게으른 젊은이들은 대낮부터 모여앉아 물담배를 피워댔다.
불과 60여㎞ 떨어진 아프가니스탄 땅에서 전쟁이 난다는데 이 사람들은 도대체불안하지도 않단 말인가.
궁금증을 참다 못해 '곧 전쟁이 벌어진다는데 피난 준비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풍채좋은 50대 아저씨 모하마드 바시르씨는 우습다는 듯 잘라 말했다.
"가기는 어디를 가나. 죽는 날은 알라께서 정하신 것이고 피난을 간다고 바뀌는게 아니야. 우리는 알라를 믿을 뿐이지..."
가족들과 점심 나들이를 나온 사업가 임란 아흐마드씨가 미국의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더욱 논리적이었다.
"미국은 책임감이 있는 나라라고 믿는다. 온세계가 무고한 시민들에 대한 테러를 비난하고 있는 마당에 페샤와르 같은 시민 거주지역을 공격한다면 미국도 응징받아야 마땅하다"
여전히 활기를 잃지 않은듯한 국경지대의 모습이 바뀐 것은 페샤와르를 막 벗어나면서부터였다. 무장경찰들의 모습이 조금씩 늘어나는듯 싶더니 바리케이드를 친검문소가 나타났다. 외국인과 보도진은 상부의 허가없이 출입할 수 없다는 경찰과의힘겨운 실랑이 끝에 토르크햄 방향으로 접어드는 순간부터 분위기는 살벌해졌다.
무장경찰이 동승한 자동차로 갈아타고 10㎞쯤 달리자 험준한 산악지대가 다가섰다. 곳곳마다 수 십 개의 초소가 설치돼 삼엄한 경비가 펼쳐지고 오가는 차량들도크게 줄었다. 승용차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고 모래나 자갈을 실은 트럭, 주민들을 짐칸에 가득 태운 픽업트럭들만 간간이 눈에 띌 뿐이었다. 가파른 비포장 고갯길을 올라갈 수록 주민들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어느새 미소라곤 찾아볼 수 없이 긴장과 불안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깎아질듯한 절벽 옆에 지어진 흙벽돌집 마을의 주민들은 거의 한결같이 힘없이주저앉은 채였지만 높은 바위에 올라가 열심히 기도하는 남자들도 보였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동서쪽으로 갈라진 국경도시토르크햄에 도착한 것은 오후 6시께. 해발 3천500㎞나 된다는 케블산 기슭에 자리잡은 토르크햄에서 바라본 아프가니스탄의 하늘은 짙은 잿빛이었다.
잿빛 하늘을 뒤로 하고 국경선을 따라 육중하게 막아선 검은색 철문 옆의 작은쪽문에는 아직도 200여명의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파키스탄으로들어오는 철문이 닫힌 것은 오후 5시란다. 그런데도 이들은 돌아설 줄 모르고 파키스탄행을 애원하는 중이었다.
전쟁의 공포에 사로잡힌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문을 열어달라고 애원하고 있는데도 파키스탄인 국경수비대원은 "오늘 들어온 사람은 몇 명 안된다"고 퉁명스럽게말했다. 아프가니스탄쪽 토르크햄에 5천여명의 아프간 난민이 몰려있다는게 사실이냐는 질문에는 "그런 모양"이라고 대꾸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아프간 난민대책을 마련하기 보다는 오히려 이들을 막기 위해경비병력을 늘리고 감시초소를 증강했다. 탈레반 아프가니스탄 정권의 난민 추적도더욱 집요해졌을게 뻔하다. 오늘 밤에라도 미국의 공격이 시작된다면 이들의 삶은어떻게 되는 걸까.
'알라의 보호하심'도 믿지 못하고 생존을 위해 피난길에 오른 아프간 난민들. 삶의 문을 열어달라는 이들의 절규가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뒤덮고 있는데도 주위에는 온통 그들의 통로를 막으려는 감시의 눈길만 번뜩이고 있었다. 문득 잿빛 하늘을 넘나드는 이름모를 새들의 날갯짓이 돋보였다.
어느새 얼굴을 내민 별빛을 받으며 돌아서는 기자의 귓전에는 토르크햄 저편에서 공포와 절망으로 밤을 지샐 아프간 난민들의 눈물섞인 한 숨이 들려오는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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